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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Jun 27. 2022

신입사원 잔혹사, 나도 꼰대가 되어간다.

아니 근데 진짜 요즘 애들은 왜이래?

친구들에게 내가 꼰대가 될 기미가 보이면 싸대기를 날려달라며 말하긴 했지만, 내 주변에는 “야, 그런게 꼰대라면 난 그냥 꼰대할래”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덧 12년차, 회사에서도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고, 예전에는 이해 되지 않던 회사의 부분들이 이해가 되고 있다.



같이 하하호호 팀장님 욕을 하며 웃던 후배 사원이 더이상 나와 개별 톡을 하지 않을 때, 내가 후배 사원들에게 팀장님과 회사의 변호를 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럴 때 후배의 표정이 굳을 때, 그러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너무나 깍듯하게 나에게 소맥을 말아줄 때, ‘내가 연차가 많이 높아진 꼰대가 되었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서운하긴 하지만 이해할 수 있고 나도 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해되지 않는 상사 만큼이나 이해되지 않는 후배들이 늘어나고 있고 나도 모르게 ‘나 때는 안저랬는데...’ 라는 말이 (속으로) 나오고 있으니까.



Z세대와의 생각 차이 등은 나 역시도 혼란스러워서 논외로 치겠다. 근무시간 외 연락은 이 글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고 나도 너무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업계의 특성 상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차츰 달라져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최대한 내 선에서 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후배들은 이런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라, 뭔가 좀 다들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A는 굉장히 싹싹하고 좋은 신입사원이었다. 경력직 이직을 한 나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려해서 타 팀 신입사원 중 가장 먼저 이름을 외운 친구였다. 참 넉살도 좋고 사교성이 좋은 친구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교성이 과하게 발동한 게 문제였다. 입사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업계 회식이었다. 업계의 특성 상 배우와 유명 감독이 함께 했고, 그들도 편하게 술을 마시고 풀어지는 자리였다. 그러다보니 업계 사람임을 확인받은 사람만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회식 중 낯선 얼굴들이 보였다. 신인 배우인가? 하고 모두가 애매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A가 그들을 챙기는 게 보였고, 신입사원인 그가 저렇게 낯선 얼굴의 업계 사람을 많이 안다고? 라는 의문이 들고 있을 때였다.


와, 미친 놈. 클럽에서 만난 여자를 데리고 온 거 였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다른 사람들이 가서 확인한 결과, 그들은 업계 사람이 아닌 A가 그 전날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사교성이 너무 좋은 A가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에게 자신의 회사 파티에 초대하겠다며 배우와 감독이 즐비한 자리에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을 입장시킨 것이었다. 이런 예민한 업계가 아닐지라도 회사 회식에 클럽에서 만난 사람을 끌고 오다니... 도저히 내 머리 속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A는 그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 했지만.




컨텐츠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컨텐츠가 사람을 망친다는 것도 늘 느끼고 있다. 신입사원 B는 유독 실수가 잦은 스타일이었다. 모르는 것은 가르치면 되고, 실수하는 것은 잡아 주면 된다. 나도 늘 그런 마음으로 그를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같은 실수가 여러번 반복될 때는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화를 내곤 했다. 그동안 데이터를 쌓아온 사내 공유 파일을 잘못 건드려서 데이터를 날릴 뻔 했을 때도, 그 이유가 엑셀 다른 이름 저장하기를 몰라서였다고 대답했을 때도 참았지만 워크샵 장소 예약하기와 같은 단순 업무를 잊어버리고 하지 않았을 때나 (심지어 장소도 내가 찾아서 알려주었고, 예약 후 결제 과정만 맡겼다) 시킨 업무의 데드라인을 몇번이나 지키지 않았을 때는 제대로 혼냈다.


그런데 혼을 내고 나면 B는 꼭 30분정도 사라지곤 했다. 한두번은 신경쓰지 않았지만 계속 그 일이반복되자 혹시 화장실에 가서 우는 건지 걱정이 되어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장실에도 없었고, 아예 사내에 보이지 않아서 모두가 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얘는 어딜 간건가 ... 그리고 그를 찾은 곳은, 회사 옥상이었다.


미생이 애들 다 망쳐놨네...


B는 혼자 옥상에 올라가서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회사 옥상은 원래 올라가면 안되는 곳이었는데 (비상상황 대비 잠궈놓지 않았을 뿐) 어떻게 알았는지 올라가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사색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억지로 데려와서 ‘옥상은 안전상의 이유로 올라가면 안되고, 게다가 상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렇게 장시간 자리를 비우면 안된다’고 알려주자 어깨가 다시 푹 쳐졌다. 나도 상사에게 혼나서 푹 쳐졌던 적이 분명 많지만, 옥상에서 음악을 틀고 스스로 다시 해낼 수 있다며 다독인 적이 있었던가, 내가 올챙이적도 감성도 다 잊고 이렇게 냉정해진 걸까, 혼란에 휩싸였다.




모르는 업무는 가르치면서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일하는 센스라는 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눈치가 빠르고 이 업무를 왜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 일하는 센스가 없는 것도 당연히 가르치면서 해야하는 거지만, 가끔 이런 센스는 어디서부터 잡아줘야하는 걸까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유명한 모 배우와 촬영을 기획하고 있을 때였다. 그에 대한 다큐의 느낌으로 기획된 촬영이라 배우에게 할 질문들을 리스트업 하고 있었고, 신입사원 C에게도 질문을 내도록 시켰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이고, 워낙 찍은 영화도 많아서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에 대한 질문만 해도 여러개가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C가 적어온 질문 리스트를 확인했는데,


발전한 현대 대한민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써있었다. 이 아이는 지금 배우 다큐라는 걸 알고 질문을 쓴 걸까, 역사 다큐로 잘못 이해한걸까. 그리고 C가 이 배우의 나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 50대가 된 배우인데, 일제 강점기와 6.25라도 겪은 줄 아는걸까. 나는 C가 정말 대체 왜 이 질문을 썼는지, 정말 그 배우에게 이 대답이 듣고 싶은건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C에게서 답변은 듣지 못했고, 다시 영화에 대한 질문으로 정리해서 내라고 하자 그가 다시 써왔다.


맡으신 영화 속 캐릭터 중
친구였던 사람을 배신하거나 적이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여기까지 질문을 받고서 우리는 C에게 더이상 이 일을 시키지 않았다. 더 시켰다가는 또 어떤 생각하지도 못한 신선한 질문이 나올지 차마 감당할 수가 없어서.


다시 생각해봐도 이들의 행동은 나는 이해가 안된다. 내가 이미 꼰대가 되어서 신입사원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그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혼내기만 한걸까? 만약 그렇다, 라고 한다면 나는 꼰대가 된 게 맞고, 그냥 꼰대를 하련다. 발전한 현대 대한민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꼰대로 그저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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