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너머의 깨달음.
미루고 미루던 퓰리처 사진전, 마침내 그 숙제를 해결했다. 가족과 함께할 계획이었으나, 딸아이의 다리 통증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혼자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덕분에 한층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 달 전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해 두고도 차일피일 미뤘으나, 마감일이 다가온 그날에서야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사진들과 처음 마주하는 장면들이 뒤섞인 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수많은 관람객의 열기였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사진의 매력에 이끌리는 걸까? 긴 줄을 피해 가며 한 장 한 장 눈에 담았다. 역시 사진은 크게 인화해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법. 거대한 이미지 속에서 피사체의 숨결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명성대로 모든 사진은 강렬한 감정을 머금고 있었다. 슬픔, 경이로움, 안타까움, 연민... 한 장의 사진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그 결정적 순간들을 담아낸 사진가들에게 경외심과 감사가 밀려왔다. 그리고 뜻밖의 깨달음도 있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사진의 느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프레임을 꽉 채운 인물, 그 깊은 눈빛에서 오는 울림. 최근 35mm와 50mm 렌즈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오늘 이후로는 50mm가 인물 사진에 더욱 적합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약 한 시간 동안 전시장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러나 출구에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왔다. 마지막 순간, 다시 발걸음을 돌려 빠르게 전시장을 훑었다. 마치 한 번이라도 더 기억 속에 새기고 싶은 마음처럼. 각 사진 속 얼굴들과 눈을 맞추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기념품 샵에 들러 퓰리처 사진전 도록을 구입했다. 사진책은 가격이 부담스러워 자주 사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집까지 함께 품에 안았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역사를 바꾼 사진들에 대한 작은 헌사를 바치고 싶었다. 그 책들은 앞으로 내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멀고도 긴 여정이었지만, 사진과 하나 된 시간이었다. 오늘의 경험은 앞으로 내 사진 작업에 깊이 스며들 것이다. 한 사람의 시선이 프레임 속에 담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퓰리처의 사진가들에게서 배웠다. 언젠가, 나 또한 한 장의 사진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를 꿈꾼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셔터를 누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