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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명이었고, 누군가의 관식이었다

살아지는 삶 안에도, 찬란한 사랑이 있었다.

by 행복을 그리다

드라마 한 편이 나를 무너뜨렸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나는 금명이었고, 지금은 누군가의 관식이가 되었다.


금명이의 눈으로 본 엄마 애순과 아빠 관식의 삶은,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나의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 이야기였다.


억척스럽던 엄마. 말없이 참고 견디던 아빠.

고마우면서도, 왜인지 늘 짜증 났다.


우리 엄마도 애순처럼 현실적이고 강했다.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잔소리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됐다.


아빠는 관식처럼 조용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착하고 성실했지만, 어린 내게는 답답하고 무기력해 보였다.

돈 버는 일엔 영 소질이 없어 보였고, 현실 감각도 부족해 보였다.


나는 억척스러운 엄마와 그렇게 말없이 견디는 아버지가 답답했다.

그들은 내게 너무 거칠고, 다른 집 부모보다 못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머리를 믿었고, 스스로는 훨씬 더 잘난 사람이라고 여겼다.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않겠어. 나는 더 잘 살아야 해.”


나는 공부에 특별한 아이였다.

엄마는 내 재능을 기뻐했지만, 그 재능을 감당하는 건 늘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힘들어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랑 위에서 지금의 자리에 섰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감사하기보단 늘 더 많은 걸 바랐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대단해지기를.


그래서였을까.

금명이를 일본 유학 보내기 위해 집을 팔고,

은명이를 유치장에서 꺼내기 위해 배를 파는

관식과 애순의 모습을 보며 참을 수 없이 울었다.

그 장면 속엔 내 부모가 있었다.

내가 너무 늦게 알아버린 사랑의 모양이 있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다.

부모님의 삶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된다.

사랑은 언제나 따뜻한 얼굴만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때로는 불편하고, 아프고, 멀게 느껴져도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사랑이었다는 걸.


나도 결국 사장도, 의사도, 판검사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번듯한 가족을 이루고, 딸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의 바탕엔

억척스럽고도 다정했던

두 사람의 ‘살아지는 삶’이 있었다.


그들의 삶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결코 작지 않았다.


나는 금명이었고, 관식과 애순의 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누군가의 관식이 되어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사랑을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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