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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온이라는 진리

by 행복을 그리다

맥심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비 내리는 식목일, 일 없는 토요일 아침.

고요하다. 이보다 더 평온할 수 있을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회사 일에 쫓겨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더 빨리, 더 잘, 더 완벽하게”를 외쳤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팀장님의 피드백도 받지 못한 채 멈춰 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조금 천천히 해도 괜찮지 않을까?’


급하지 않아도 되는 삶.

느릿하고, 미완인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가장 나다운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직감.


문득 내 앞에 놓인 맥북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사진 편집도 안 해서

맥북은 아무런 열도 없이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시원하긴 했지만,

나는 생각했다.


차가운 것보다는 미온이 더 좋다는 것을.

차가운 건 완전해 보이지만,

오래 머물기엔 춥고 멀게 느껴진다.

반면, 미온은 애매하고 불완전해 보여도

그 안에 따뜻한 숨결이 있다.

불완이지만, 살아 있는 온기.


더 깊이 들여다보면,

불교의 인연설은 말한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자리가 바로 진리라고.

최적도, 이상도 필요 없는 자리.

그러니 미온은 더 이상 중간도, 타협도 아니다.

그 자체로 진리다.


좋고 나쁨의 경계를 넘어,

완전과 불완전 사이의 긴장을 내려놓고

지금 이 자리에 머무른다.


오늘 나는 미온에 머문다.

더 이상 완전하려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두르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 충분히 머물며,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 진리의 온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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