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수줍어서 말도 못 하고
"와, 차장님.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시네요? 엄청 동안이세요."
오늘도 동안이라는 말을 듣는다. 칭찬일까, 아니면 생각보다 안 젊네? 하는 순수한 놀람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익숙할 뿐이다.
"여자 같이 생겼다."
"피부가 정말 좋으세요."
"예쁘게 생기셨어요."
이 말들이 남자인 내게 칭찬으로 다가올 때도 있고,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동안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공허하다.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다. 감정을 덧붙이는 것은 늘 내 몫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것은 늘 좋은 일만은 아니다. 직장에서 나를 후배로 여기는 상사들, 공식 석상에서 직급을 낮춰 보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내 나이를 먼저 말한다. 덧붙여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동안이지만 어리지 않다고, 그러니 나를 무시하지 말라고.
동안의 유전자는 엄마도 예외가 아니다.
"23층 할머니가 나한테 반말을 하더라니까.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 말이야."
엄마도 자신의 동안을 설명하느라 바쁘다. 동안으로 살아간다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불편한 일일까.
돌이켜 생각해 본다. 동안이라는 말은 아무 감정도 없다. 감정은 내가, 그리고 엄마가 그 위에 얹는다. 어려 보이니 손해라는 생각. 더 대접받고 싶은 마음.
나이가 들수록 동안이라는 말이 점점 더 반가워지는 걸 느낀다. 반대로 젊을 때는 나이에 집착했다.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었고, 어린 티를 감추고 싶었다. 결국 동안이라는 말은 나를 정의하지 못한다. 그 속에 무게를 더하거나 빼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오늘 후배 과장들과 나눈 동안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눈빛에는 이 선배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구나 하는 가벼운 놀라움이 담겨 있다. 그 너머에는 어쩌면 얕잡아 봤을지도 모른다는 미묘한 기색이 엿보인다.
"맞아요. 그런 말 하는 후배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죠. 선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 말에 억울한 마음이 꿈틀댄다. 수많은 에피소드를 꺼내며 스스로를 변호하고 만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어려 보인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아니, 사실 나는 동안이라는 말을 은근히 즐겨왔다. 마음 한구석에서 동안인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아직 30대로 보인다는 말을 흐뭇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다음번에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자.
"네, 제가 좀 동안이지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활짝 웃어주자. 나이에, 남들의 시선에, 대접받는 일과 손해 보는 일에서 초연해지자.
동안으로 사는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