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회고

그리움은 늘 저만치서

by 준익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마당에 이끼가 번져간다.

풀도 나물도 아닌 것이 습한 시멘트 바닥에 생육해 초록의 카펫을 깔아놓았다.

주인이던 객식구던 그 땅을 밟고서야 온기도 있고 생기도 날 텐데

어느 순간 손과 발길이 닿지 못한 그 집에선 을씨년스러운 기운마저 처량하게 흔들린다.


이층 창문으로 내려다보면 계절의 변화만큼 변화무쌍한 곳이 옆집 마당이다.

봄부터 초록 모종들이 가득하고

여름이면 장미 넝쿨이 만발하며

가을이면 대추나무 열매가 사과 향만큼 싱그러웠고 겨울이면 아쉽지도 않을 분재들이 눈꽃 맞은

빈 나무 뒤에 자리를 했다.


작은 손으로 흙을 만지고 물뿌리개로 흩뿌리며 바지런한 정성으로 가꿔왔을 화단엔 주인 할머니의 사랑 먹은 피톤치드 향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자신의 키보다 몇 배는 큰 나무만큼 세월도 더해져 매년 그곳이 제 자리인 양 철마다 그 얼굴 그 자태 그대로 자식처럼 자라났다.

높고 낮은 턱 난간으로 길고양이가 캣워크를 뽐내는 무대 밑으로 형형색색 식물들이 빼곡히 움집 해 관중석을 채웠다.

대문 위 아치 철재 장미꽃 화관이 한쪽으로 넘쳐 우리 집 담장을 침범하지만 향긋한 꽃향기가 바람 타고 내려와 집 마당을 어지럽혀도 밉지 않은 꽃잎들이다.



새벽을 깨우는 앰뷸런스 소리와 찬란했던 옆집 정원의 생기도 그 시간 그 모습 그대로 정지된 채

흑백사진처럼 흐려져갔다.

은색 대문은 굳게 닫힌 채 담 너머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키가 자라났다.






장마 끝 8월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남편에게서 사진 한 장이 전송되었다.


“정글이 되었네 ㅠㅠ.”


짧은 글과 이모티콘에서 느껴지는 현장 사진엔 아이 키만큼 자라 난 잡풀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알던 그 집이 맞나 하고 확대해서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빈집으로 방치되었던 본가는 바쁘다는 핑계가 무관심이었다는 대답으로

남편의 마음만큼 헝클어져 어지럽게 자랐나 보다.


결혼 전 시부모님께 인사를 가던 날 마땅히 선물할 게 생각나지 않아 장미꽃 한 다발을 샀다.

손에 들린 꽃을 보고 갸우뚱한 표정만 지은 채 아무 말 없던 남편이 후에 들고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었다고 했다.

검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 한 편 장미나무에 봄 햇살만큼 무성하게 꽃이 흐드러져있었다.

당황한 내 손에 들린 장미꽃을 보시고는 “가게서 파는 꽃이 역시 예쁘네.”

라며 반겨 주셨다.

넓지 않은 마당에 화단이 반이나 차지해서 5월부터 꽃들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개화했다.

가지를 치고 솎아 내어도 다음 해는 더 많이 피는 것 같았고 떨어지는 꽃잎들을 연신 빗자루질하고 돌아서면 약을 올리 듯 붉은 깃털처럼 나부대고 있었다.

시멘트 바닥 위에 흩뿌려진 강열한 열정들은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의 귀여운 작품이나

앤디 워홀의 모던함에 비길만한 예술품 같았었다.

그곳에서 첫아들을 낳고 키우며 장미꽃만큼 화려한 삶을 살 길 기대했다.

아장아장 걷던 아들과 키우던 허스키는 친구처럼 커갔고

꽃잎을 모아둔 한편에서 뒹굴던 공생의 아름다움은 내 가슴을 벅차게도 했었다.

꽃처럼 예쁜 아들은 있지만 항상 함께 할 것 같았던 허스키는 제 몸처럼 하얀 눈이 내리던 날 바닥의 꽃잎처럼 시들어 갔다.


아직도 장미꽃은 돈을 주고 사지는 않지만 담장 위로 보이는 꽃을 볼 때면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에 몸서리쳐진다.

있을 때는 귀찮고, 늘 보아오던 것들의 무던함에 소홀해지고

어쩌다 생각나면 아쉽다.

그러다 내가 일말의 경험에 다시 하지 않을 것 같은 후회라는 것도, 떨어지는 꽃잎만큼 반성하는 것도, 그리움일 것이다.

방치되어 썰렁한 마당보다 무성하게 자라버린 이름 모를 잡풀들에 더 회한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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