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오던 날 너는

이름 없는 모든 생명에게

by 준익

으스름달밤이면 루틴대로 이층 베란다 쪽 그릇에 사료를 듬뿍 붓는다.

이미 와서 기다렸는지'촤르르' 소리에 시커먼 물체가 쓱 다가와서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까미였다.

몇 년 전부터 마당에 오는 고양이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지만 길냥이들 특성상 쉽게 다가오는 애들은 드물었다.

오히려 그게 나도 그 애들에게도 부담 없는 거리라 생각한다.

적당한 필요한 만큼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거리.


요사이 마당으로 사료를 먹으러 오지만 늘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아무리 맛있는 간식으로 친절을 베풀어도 항상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 먹는 아이였다.

가끔, 아주 가끔 먹이 경쟁에서 뒤처졌을 때 들르는 곳이라 생각 든다.

전체적으로 까만 몸에 네 발과 입 주변만 하얗다... 그래서 진부하지만 까미라 지었다.

올 블랙인 찐 까미도 있지만 스쳐 지나는 애들에게 흔한 이름하나 지어주어도 괜찮은 삶이라 생각해서 보이는 대로 즉석에서 불러주곤 한다.

그래서 이름이 겹치는 아이들도 있다.


2층 베란다까지 와서 사료를 기다릴 줄은 몰랐다.

사실 2층은 내가 조금 더 애정을 가지는 고양이들에게 제공한 장소여서 지나는 애들은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거기에서도 넌 되고 넌 안된다는 걸로 나누고 있는 나 자신이 이기적이라 생각되지만 자칫 싸움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알고 올라왔구나.

다행히 반 상주묘들이 부재중이라 이왕 올라왔으니 하는 마음에서 사료와 간식을 주었다.

그런데 사료를 붓는데도 의심 없이 성큼성큼 다가와 오히려 내가 겁을 먹었다.

쌕쌕 숨소리는 거칠고 머리를 박고 와구와구 먹어대는 모습에 또 울컥 연민의 감정이 올라 목이 메었다.

구내염과 찢긴 피부가 그동안 고단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일층으로 내려가 닭가슴살 한 봉지를 뜯었다.

한참 먹고 있는 그릇에 닭가슴살을 부으니 화들짝 놀라 내 손등을 할퀴었다.

"아얏. 까미야 왜 그래. 고기 주려고 했어."

선혈은 뚝뚝 떨어지고 날아간 닭가슴살은 바닥에 척 붙었다.

저걸 그릇에 올려줘야 하는데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니 무섭기도 했다.

험한 길 생활 속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였으리라.

대충 휴지로 피를 닦고 빗자루를 방패 삼아 흔들면서 닭고기를 올려주었다.

유리문을 닫으니 그제서야 안심이 되나 보다.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보지 못했던 이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슬픔들이 존재한다.

자연의 섭리, 거스르는 행위라고 이분법적 사고로 잘잘못을 따지는 사람도 많지만 세상이치 그렇게 딱 떨어지듯 수학적이기만 한가.

더더욱 정답을 도출하기에도 어려운 게 인간의 감정이 아닐는지.


편안하게 밥을 먹게 놔두고 잠시 후 올라가 보니 만들어 놓은 집 주변으로 냄새를 맡고 얼굴로 비비더니 급기야 조심스레 들어가 버린다.

나비를 위한 집이어서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쫓아낼 수 없어서 오늘밤은 그냥 두기로 했다.

너에게도 잠깐의 편안함을 느껴보라는 작은 배려였다.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하루종일 내릴 것 같은 소란스럽지 않은 빗소리에 노곤해졌다.

아침 준비를 하는 사이 작은 아들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모르는 까만 고양이가 이층에 있는데?"

출근 준비를 하던 아들은 까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응, 까미라고 가끔 밥 먹으러 오는 애야. 놔둬."

"그게 아니라 어디 아픈 거 같은데?"

"아! 조금 아픈 애야. 오늘 약 사다 먹일 거야."

쟤는 가루로 먹여야 하는지 알약으로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이

"음... 죽은 거 같은데?"

"뭐라고?"



식사준비를 하다가 부리나케 이층으로 올라갔다.

박스집 앞에 놓아둔 스크레쳐 위에 가로로 걸쳐져 앞발과 뒷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누워있었다.

눈은 떠있고 혀가 조금 나왔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만져보니 느껴지는 아직은 따뜻한 온기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무작정 흔들었다.

'까미야 일어나 봐. 닭고기 줄게.

그깟 닭고기 어제 두 서너 개 더 까서 줄 걸.

오늘 너 때문에 비 오는데도 약국 다녀오려고 했단 말이야.'


컥컥 거리며 우는 나를 아들이 제지했다.

"엄마 몸이 차가워. 죽었나 봐."

몸이 차갑다고? 난 왜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거야.

고양이는 죽을 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혼자 죽는다고 하던데

이렇게 다 보이는 데서 간 거면 그 말도 틀린 말이다.

밤새 안녕이라고 했는데.

이대로 둘 순 없지만 경찰서나 시청에 전화하긴 더 싫었다.

종량제 봉투에 넣어 쓰레기 배출로 보내기엔 이 세상에 산 흔적마저 가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고민 끝에 아들이 박스를 챙겨 와 조심히 넣었다.

감지못 한 두 눈을 손가락으로 살살 풀어주었고 물티슈로 온몸을 닦았다.

죽어서야 이렇게 만져보는구나.


부슬부슬 비는 오지만 하얀 면러닝으로 감싼 까미를 데리고 앞 산으로 갔다.

아직 딱딱하게 굳어있는 흙을 파느라 아들의 이마에 땀이 송글 맺혔다.

이 넓은 우주에 태어나 작은 호미로 몸만큼만 파서 육체와 추억과 좋았던 기억만 담고 가길 기도했다.

아팠던 것, 힘들었던 삶은 여기 두라고 안녕을 고했다.

우산도 쓰지못 한 아들의 눈에도 하얀 눈물이 흘렀다.

잘 가라.

도움도 되지못 한 아들 옆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후둑후둑 빗소리에 내 울음도 번져가고 누운 까미의 마지막 얼굴을 보니 아프지 않고 편안해 보여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음 생이 존재한다면 더 좋은 곳에서 선택받는 삶으로 태어나길 바란다.

훗날 나를 만난다면 나는 사과를 할 거고 까미는 나를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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