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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삶을 위해

고급진 취미를 연습 중입니다.

by 우아옹

어둑어둑해지는 강화도 어느 마을

가족여행 중 허름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끼이익

문을 열자 나이 많아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일어나 인사를 하셨다.

허름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안에는 초록초록한 꽃들과 많은 액자들로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다.

우리만 있는 이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니 멀리서 봤을 때랑은 다르게 액자 속 그림들이 어수선해 보였다.

딱 봐도 전문가 느낌은 일도 없는, 그러나 정말로 멋진 작품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좀 전에 아주머니가 일어난 그곳, 한쪽 구석을 보니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물감과 붓들이 보였다.

"직접 그리신 거예요?"

무슨 용기인지 나도 모르게 물어보고 있었다.

"나이 드니깐 이거 저거 해보고 싶어서요"


'나이 들어도 해보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일까?'

사실 인스타나 아이들 미술학원의 작품을 보면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과 '나는 재능이 없어'라는 생각이 더해지면서 애써 외면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그날의 기억은 이미 지워지고 있을 때쯤 아파트에서 학습등대 수업으로 어반스케치 무료수강 공지가 떴다.

'더 늦기 전에 해보자'

세상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바로 등록을 했다.

첫 수업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묘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작품 아닌 작품을 신랑에게 제일 먼저 카톡으로 보냈다.

잘 그리지 못한 거를 아는데 그래도 잘 그렸다는 신랑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용기가 났다.

부모말연습 때 조장님으로 만난 민그릿님이 하시는 드로잉수업을 인스타에서 보면서 매번 부러워만 했었는데 용기 있게 참여하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반겨주셔서 난 드친(드로잉친구)이 되었다.

새벽 5시 반, 일주일에 3번을 목표로 시작했다.

작은 그림 하나 완성하는데 꼬박 1시간이 소요되는데 느낌은 10분도 안 한 느낌이다.

엉망진창 맘대로 가있는 선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모양이 완성되는 것을 보면서 엉망진창이던 내 마음도 가지런히 정돈되는 느낌이다.

오늘 수업 중 60대 드친님이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불현듯 가족여행에서 만난 식당 주인 할머니가 생각났다.

손녀딸이 본인의 그림을 좋아해서 자꾸 그리게 된다고 했던 그분.

그리고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할머니라고 불리게 될 20년 후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고급진 취미를 하고 있을 나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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