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삼 남매와 거리 두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독립심 키우기 전에 엄마부터 독립하기

by 우아옹

첫아이를 낳고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았을 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그래서 하루를 초단위로 나눠가며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내 안의 물음

'도대체 내 시간은 왜 없는 거야?'

엄마니깐 내 시간을 가지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던 마음에 살금살금 피어오르는 푸념.

그 푸념은 분노가 되어 아이들에게 느닷없이 발사되기도 하고,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나를 지하 저세계로 꾹 눌러버리기도 했다.




이어령 님의 '어미곰처럼'을 만나는 순간 기절할 거 같은 현기증이 왔다.

내가 '좋은 엄마'를 위해 다짐하고 행동했던 건 진짜 좋은 엄마가 아니었구나.

단지 나를 갉아먹는 가짜 좋은 엄마였구나.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이제 알았으니 진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엄마인 내가 먼저 독립하고 성장해 보자.

그러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건 뭐?

'거. 리. 두. 기'


아침 8시 반, 학교에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늦는다.


예전의 가짜 좋은 엄마

늦었어 늦었어! 빨리 좀 하자!

오늘은 늦었으니깐 엄마가 차로 데려다줄게. 어서 준비해.


거리두기 후 진짜 좋은 엄마

벌써 8시 반이네!

애들아, 엄마는 너네랑 있어서 좋긴 한데 너네는 학교 안 늦어?(최대한 차분하게 거짓말 백만 개를 뿌린다.)

이러면 오늘은 너네 뛰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똑같은 아침 8시 반이다.

그런데 재촉하면서 잔소리 폭탄을 내던지는 엄마와 차로 가는 거나, 아이들끼리 으쌰으쌰 걸어가나 아이들은 9시 전에 학교에 도착한다.

단지 9시에 학교 책상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마음만이 다를뿐이리.

엄마에게 실컷 잔소리를 먹고 온 아이와 자기 스스로 준비해서 시간 안에 도착했다는 뿌듯함을 먹은 아이라는 차이뿐.


엄마의 조급함을 내려놓고 거리 두기를 했을 뿐인데 우리 집 아침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거리 두기를 하면 쏟아질 비난과 못난 죄책감에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하다.

단호하고 차가운데 아이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오히려 자신들이 스스로 했다는 뿌듯함까지 새어 나온다.

그리고 8시 반, 러닝머신에 올라가 start 버튼을 누르며 찐 웃음을 짓는 나를 발견한다.



이어령 님의 차가운 사랑이 떠오른다.

내게 지금 필요한 사랑은 차가운 사랑일지도.


어미곰처럼 _ 이어령

어미곰은 어린것이 두 살쯤 되면
새끼를 데리고 먼 숲으로 간다고 해요.
눈여겨보아 두었던 산딸기밭.
어린 곰은 산딸기에 눈이 팔려서 어미곰을 잊고
그 틈을 타서 어미곰은
애지중지 침 발라 키우던 새끼를 버리고
매정스럽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려요.

발톱이 자라고 이빨이 자라
이제 혼자서 살아갈 힘이 붙으면
혼자 살아가라고 버리고 와요.

새끼곰을 껴안는 것이 어미곰 사랑이듯이
새끼곰 버리는 것도 어미곰 사랑.
불 같은 사랑과 얼음장 같은 사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산딸기밭을 보아 두세요.
아이들이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몰래 떠나는 헤어지는 연습도 해두세요.

눈물이 나도 뒤돌아보지 않는.
그게 언제냐고요.
벌써 시작되었어요.

탯줄을 끊을 때부터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손을 놓아주었던 그때부터
무릎을 깨뜨려도
잡은 손 놓아주었던 날을
기억하세요.

어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사랑
얼음장 같은 차가운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을 항상 응원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아한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