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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 원짜리 우유 사러 가서 받은 6만 원짜리 영수증

무료배송의 늪

by 우아옹



우리 아빠는 삼시세끼 밥과 국이 있어야 진정한 식사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30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나 역시 아침밥으로 흰쌀밥을 먹지 않으면 그것은 식사가 아닌 게 되었다.

덕분에 삼 남매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매일 아침 하얀 쌀밥을 먹어야 했다.

손흥민아버지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책에서 매일 아침 시리얼과 과일로 식사를 대체한다는 말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아침밥을 안 먹으면 키도 안 크고 건강하지 못해'라는 생각에 큰 금이 갔다.

손흥민선수도 아침은 시리얼인데, 뭐 하러 아침밥 먹기 힘들어 밥알을 세고 있는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꾸역꾸역 먹게 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자.


"오늘 아침은 뭐 먹을래?"

물론 아침을 간편하게 차려도 된다는 엄마의 사심 가득한 외침이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미 10년 넘게 아침에 탄수화물을 섭취하여 '시리얼은 시리얼이요, 밥은 밥이요'하는 큰아들 덕분에 밥은 기본으로 깔아놓은 아침식탁이지만 어쨌든 우리 집 식탁은 손흥민선수 덕분에 유해졌다.

신난 아이들은 일주일에 반 이상은 시리얼을 외친다.

덕분에 2.3리터 우유는 사놓고 돌아서면 바닥이다.




오늘도 시리얼을 외치는 아이들을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뿔싸!

어제 아이들 재우며 함께 꿈나라로 가느냐고 로켓배송을 놓쳐버렸다.

시리얼이 먹고 싶다고 투덜대는 아이들에게 하교 후에 짠! 하고 우유가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10시 전에만 주문하면 오늘 중으로 배송된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호기롭게 말했다.


아이들 등교 후 클릭하려는 순간

'잠깐, 무료배송을 하려면 6천 원짜리 우유 하나로는 부족하고 뭔가를 추가해야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운동 가는 거 집 앞 마트에서 우유만 후딱 사 와야겠다는 생각에 마트로 갔다.


마트 들어가는 길에 카트가 보였지만 필요 없다.

"우유 하나 사러 왔으니 그냥 전진하라!"


'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멜론이 할인을 하네.'

'살까? 아니야 무겁고 집에 과일도 많아.'

'어, 시리얼이 왜 할인을 이렇게 많이 하지?'

'어, 포켓몬빵이 새로 나온 게 있네, 이거 아이들이 안 먹어본 건데'


빨간 카트를 외면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포켓몬빵 3개와 우유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카트를 모시러 갔다.

커다란 빨간 카트를 밀고 들어오면서 생각했다.

'론은 들고 가기도 무거운데 배달을 시킬까? 가만있어봐라 여기는 3만 원 이상 무료배송이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멜론과 할인을 많이 하는 시리얼, 새로 나온 포켓몬빵을 넣었지만 3만 원이 안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럼 몇 개 더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춤을 추듯 마트를 한 바퀴 돌았다.


띡띡띡

69,900원이 결제되었습니다.


분명 6천 원짜리 우유하나 사러 왔는데 내손에는 69,900원의 숫자가 또렷이 찍힌 영수증이 있을 뿐이다.


하필 우유가 있는 냉장식품이 매장 맨 안쪽에 있어 마트상술에 당했다고 핑계를 되어본다.



우리집 냉장고 필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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