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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부부 이야기

그렇게 노부부가 되었답니다

by 우아옹


50년 전
수(동양자수)를 놓던 갑순이와 표구를 하던 갑돌이가 살았더래요.
스무 살 앳된 갑돌이와 갑순이는 사랑을 했더래요



희망찬 칠칠 연도에 보자


친정 책장 맨 아랫칸에 있는 옛날 접착식 앨범에는 흑백 엽서들이 사진들 틈에 찰싹 붙어있다.

곰신이었던 엄마가 아빠에게 받은 엽서 말미에는 '희망찬 칠칠 연도에 보자'라는 손글씨가 적혀있다.

(한글로 멋 좀 부린 아빠)

전화도 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 36개월의 곰신생활을 스무 살 우리 엄마는 어찌 버텼을까?


엄마의 칠순잔칫날 사위가 1박 2일 코스로 준비한 호캉스에 기분이 좋아진 노부부는 연신 본인들의 라떼시절 만담으로 목소리를 높이셨다.

군대에 가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아빠의 장모님)를 모시고 면회를 온 엄마 덕분에 첫 상견례를 군대에서 했던 당황스러운 이야기.

"전라도 촌구석에서 서울로 시집간다고 좋아했더니 썩을년이 더 촌구석으로 시집가는 거냐"며 남양주 고개를 넘는 내내 외할머니에게 쉼 없이 잔소리를 들었단 이야기.

남양주 시골 골짜기 고개만 넘으면 다 아빠땅인 줄 알았다는 스무 살 엄마이야기.

잘 나가던 사업이 망해 서울에서 남양주 시골로 이사 온 이야기.


아직도 기억난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빨간 전화기가 들어있는 박스를 아기를 감싸듯 안고 세상 해맑은 표정을 짓던 엄마모습이.

그날 남양주 시골로 이사 와서 호시탐탐 서울로 이사가 기를 희망했던 엄마는 아빠의 전화기 뇌물에 홀라당 넘어갔다.

아직도 "전화기 하나에 넘어간 내가 바보지"라며 후회하는 엄마지만, 가족 모두 휴대폰이 있는데도 처음 받았던 번호가 좋아서 해지할 수 없다며 매달 전화료를 내고 있는 것도 우리 엄마다.



당신은 내 삼복 덕분에 사는 거야!


아빠는 우리가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이야기하신다.

인생을 살다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풀릴 때가 있다고, 하지만 또 잘 풀릴 때도 있으니 아등바등 살지 말고 조금 손해 보더라도 행복하게 살라고.

아빠 사업이 그랬다고 한다.

잘 나가던 사업이 한순간 내려가기 시작하니 끝도 없었다고 한다.

자존심 빼면 남은 게 없던 그 시절

사업실패로 방황하던 아빠 곁을 떠나지 않고 있어 준 엄마가 항상 고마웠다는 진심을 툭 뱉어내곤 한다.

그러면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나도 힘들었지! 도망가려고 했는데 점쟁이가 나한테 타고난 복이 3개나 있다잖아, 곧 좋은 날 올 거라고"

그러면서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당신은 내 삼복 덕에 사는 거야!"



그렇게 노부부가 되었습니다.


아빠의 최대자랑은 손주가 다섯이라는 거다.

다른 복은 몰라도 자식복은 있다며 오늘도 쉴 새 없이 내리사랑을 실천 중이시다.

그 내리사랑에 아직도 질투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아직도 놀리는 재미에 사는 우리 아빠.

아빠는 오늘도 가족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며 행복 충만한 톡을 남기신다.

"오늘 내가 문여사 맛있는 닭갈비 사줬다."

그럼 우리는 부러움의 이모티콘과 함께 답톡을 보낸다.

"오~ 노부부, 데이트 즐겁게 하셔요~"



그렇게 갑돌이와 갑순이는 다정한 노부부가 되었더래요.


오늘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어느 노부부의 삶처럼 우리도 함께 웃고, 힘들 땐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몇십 년 후 다정한 노부부가 되어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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