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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태풍주의보 발효
내 마음은 태풍특보 발효예정이니 조심하세요
by
우아옹
Aug 10. 2023
복직하고 3주 차가 되었다.
복직하는 첫날만 빼고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출근을 감행했지만 쏟아지는 업무를 쳐내지 못하고 있다.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들기 직전에 가서 얼굴만 빼꼼 보여주는 날의 연속이다.
아이들이 짜증 내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으니 고마우면서 더욱 미안했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해야 할 보고서를 들고 집으로 왔다.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까지 보고서를 작성했다.
내일은 여유 있는 근무시간을 지내보자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마치고
나가려 하는데
띠리릭 문자가 왔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오랜만에 받아 본 비상근무 문자에 헛웃음이 나왔다.
배정받은 주민센터로 9시까지 가야 한다.
'근무시간에 비상근무를 나가면 또다시 업무는 쌓이게 될 텐데'
'그래도 눈이 아니고 비니깐 해야 할 것을 가지고 가자!'
뉴스에서 예보, 주의보, 특보 등의 말이 나오면 어김없이 비상이 걸린다.
처음 입사하고 그해 겨울 첫눈이 내리는 날 룰루랄라 백화점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말고 비상근무 소집문자를 받았다.
길게 쓰여 있던 문구였지만 결론은 "당장 나와!"였다.
그해 첫눈은 함박눈이었고, 나는 처음으로 눈 오는 새벽에 빗자루를 들고 쓸어도 쓸어도 쌓이는 눈과
사투를 벌였다.
새벽 5시쯤 되니 버스가 지나다니고 사람들이 간간히 걸어 다녔다.
눈을 쓸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던 측은한
눈빛들은 매해
겨울이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래도 대설주의보보다는 호의주의보로 걸리는 비상근무는 양반이다
.
눈보다 나가는 횟수도 적어 사무실에서 대기하면서
충분히 내가 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근무지에 도착하고 깨달았다.
내가 너무 오래 쉬었구나!
"ㅇㅇㅇㅇㅇ과는 이 지역으로 돌아보시고요, 입간판, 외부시설물 있는 곳은 확인, 정리해 주시면 됩니다."
동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내 신발은 축축한 스펀지가 되었다.
오전 내내 돌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
양말을
벗고 꽉 짜니 주르륵 물이 흘렀다.
기진맥진해서 사무실에 들어와 다 젖은 일회용 우비를 벗어 쓰레기봉투에 쏙 넣었다.
"저기! 그거 이따 나갈 때 또 써야 하는데 잘 말리시죠~"
"아~네에~"
출근길에 매일 샌들을 신던 내가 양말에 운동을 신는 모습을 보고 신랑이 말했다.
"비 오는데
운동화보단 샌들이 낫지 않겠어"
"무슨, 나 발 젖는 거 싫어하잖아! 얼마나 걷는다고, 괜찮아!"
다음에는 센스 있게 해야 할 서류가 아닌 장화를 챙겨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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