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놈들을 당장 뽑아 버려라
익숙해지기 싫은 마음
족집게를 움켜 잡고 있던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이 점점 노랗게 변하면서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꼬박 30분
손바닥에 수북이 쌓여 나를 약올리는 놈들.
80세가 넘었던 우리 할머니는 요리보고 저리 봐도 온통 갈색 머리카락뿐이었다.
아무리 들춰봐도 하얀 놈 하나 없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소유하셨던 분.
내 머리카락도 그렇다.
얇디얇은 모발에, 염색을 하지 않았지만 다들 염색을 했냐고 물어볼 정도로 갈색머리카락을 자랑했다.
'어, 이게 뭐야?' 하며 처음 놈들을 발견한 친절한 신랑 덕분에 알았다.
나는 할머니랑 다르다는 걸.
처음 몇 번은 갈색에 하얀색이 빛나 보이기까지 해서 나름 색출하는 재미가 있었다.
작년 이맘때, 미친 듯이 머리가 간지러웠던 그날 이후.
놈들이 나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처음엔 들춰야지만 나타나던 놈들이 이젠 짧은 놈, 긴 놈 상관없이 여기저기에서 출몰한다.
심지어 영역표시를 하며 집성촌을 이루려고 한다.
짧은 놈들은 잡초처럼 어떠한 도구로도 잡히질 않아 애꿎은 검은 머리카락만 희생양이 되곤 한다.
마흔을 통과하면서 익숙하지 않던, 나랑은 상관없을 거 같았던 무언가에 자꾸 익숙해지려고 한다.
나이가 드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할머니는 새치 하나 없었는데!
너무해!
하며 소심하게 발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