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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옹 Nov 03. 2023

BTS보다 바쁜 삼 남매 워킹맘의 휴가 사용기

가을 운동회

코로나 시기에 전학 온 학교에서는 매번 행사마다  부모님 입장불가라는 안내장만 보내왔다.

작년 운동회도 학교 앞 철장을 잡고 구경해야 하는 웃픈 상황을 마주 했었다.

이번 운동회는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부모님을 운동장까지 발을 들일수 있게 해 주었다.

! 아이들과의 접촉은 절대불가.

어릴 적 운동회를 준비하기 위해 한 달 넘게 부채를 들고 연습하고 부채춤을 선보이며 엄마가 싸 온 김밥을 먹던 추억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아쉬운 운동회다.

그래도 주변 아파트에서 시끄럽다는 민원 제기에 운동회가 중단되었던 작년을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 운동회라는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기도 하다.

아이들을 위한 운동회는 좋은데 홀수학년은 오전에 짝수학년은 오후에 한다는 공지에 워킹맘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9시에서 11시 반까지 1,3, 5학년
점심시간 후
12시부터 2시 반까지 2,4, 6학년


이왕 휴가 내는 거 한큐에 해결하자!

오전에 첫째 친구엄마들과 관람.

점심을 아주 간단히 먹고

바로 둥이들 친구엄마들을 만나 같이 관람.

운동회 끝나고는 이번주 토요일 생일인 둥이들을 위해 둥이 친구초대해 집에서 생파.

큰 스케줄 중간중간 영어학원 결제, 아이들이 방앗간 가듯 가는 오마뎅(떡볶이집) 결제 등 그동안 평일에 하지 못한 업무(?)를 하겠다며 야무지게 세팅을 하고 가를 냈다.




운동회 당일

들뜬 아이들은 새벽 6시에 기상을 했다.

엄마가 출근을 안 하고 운동회를 보러 온다는 말에 한껏 신난 둥이들.

새벽부터 100번은 불러대는 '엄마'소리에 '차라리 출근을 할까?'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정신없이 등교시키고 저녁 생파를 위해 지저분한 집을 후다닥 치우기 시작했다.

비록 꼬맹이 손님들이지만 깨끗한 공간 마련을 위해 열심히 쓸고 닦았더니 오래간만에 집이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9시를 지나고 있었.

 허둥지둥 학교로 향했다.

학원비 결제를 위해 준비해 둔 지역화폐쯤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노안으로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이 다 똑같이 보였는데 미리 도착한 아이친구엄마 덕분에 좋은 자리에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엄마를 찾는 첫째의 모습이 저 멀리서 보인다.

연신 손을 흔들었더니 나를 발견했다.

발견하자마자 손 한번 휙 흔들고 다른 곳을 보는 아드님

(너 사춘기 끝났다고 선포하지 않았니?)

반면에 오후에 시작한 둥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연신 손을 흔들며 쳐다보고 있어 오히려 내가 게임에 참여하라는 손짓을 해야 했다.


댄스타임에 멀뚱멀뚱 서있는 첫째 아이와 막둥이를 보니 유치원 때 한복 입고 다 같이 절하는 사진에 나만 덩그러니 서있던 사진이 생각난다.

'엄마는 충분히 이해한다'

반면 노래가 나오자마자 뛰어나가 춤을 추는 딸내미.

'엄마는 너의 자신감이 부럽다'

한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쩜 운동회를 임하는 모습이 저리 제각각인지 신기하다.

이벤트업체에서 진행을 해서인지 경기도 재미있고 진행도 빨랐다.

하지만 돗자리 하나 깔지 못하고 5시간을 서서 있었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했다.

마지막 계주 경기로 운동회는 끝이 났지만 내 휴가는 이제 바통터치를 하고 생파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들과 케이크를 사들고 친구들을 픽업해서 집으로 향했다.

체력방전 된 엄마와 달리 '오늘 만 오천보 걸었어'하면서도 씽씽한 삼 남매와 꼬마손님들.

너희의 체력이 정말 부럽구나.




난 달리기를 참 못한다.

어릴 적 운동회 때 달리기 하는 것이 제일 싫었다.

그래도 운동회를 하면 온 가족과 친척들이 와서 같이 돗자리를 깔고 김밥을 먹던 그 시절이 지금도 사진처럼 장면장면 생각난다.


어릴 적 그리 부유하지 않던 집안 살림이었지만 엄마는 생일에 잡채와 사라다를 한가득해서 친구들을 초대하게 해 주셨다.

그때 초대한 친구들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즐거웠던 기억은 생생하다.


내가 휴가를 내고 이리저리 바쁜 하루를 보낸 이유는 단 하나다.

아이들의 2학년, 5학년 운동회는 이번뿐이고, 아이들의 9살  친구들과의 생일파티도 이번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커서 지금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처럼 2학년, 5학년 운동회와 9살 생일을 기분 좋게 기억하고 좋은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연가내고 왔었지!' 하면서..

비록 아이들을 재우고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휴가를 마무리하겠다는 나의 계획은 아이들과 함께 잠들어 버린 나의 몹쓸 체력 덕분에 바통터치 되지 못했지만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고 꿈속에서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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