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2.1° 높아요
독감이 유행하면 꼭 한 번은 걸리고 가는 편이었는데 올해는 아직 잠잠합니다. 고작 한 살 더 먹었다고 유행 따라가는 속도가 좀 느려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축농증과 코편도염으로 아픈 새해를 보낸 것이 액땜이 된 것일지도 모르죠. 쓰면서 찾아봤는데 충농증이 아니라 축농증이더라구요? 귀로는 많이 듣지만, 눈으로 볼 일이 많지 않은 글자는 가끔 이렇게 틀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전을 자주 검색해 보는 편이에요. 내가 뜻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도 사전으로 찾아보면 생각지 못한 뜻일 때가 많거든요. 모국어의 맹점이랄까요. 방금 또 맹점을 검색해 보고 왔습니다. 유의어가 빈틈, 취약점 등인 것을 보니 맥락이 틀리진 않은 듯하네요. 아무튼 이런 식입니다.
주말에 사람이 많은 곳을 몇 번 가야 해서 독감 주사를 맞기로 했습니다. 어제 퇴근하고 회사 근처의 병원으로 예약을 걸어 다녀왔어요. 주사 맞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편인데도 바늘이 들어오기 직전은 긴장이 안 될 수가 없더라구요. 혹여나 몸이 굳으면 더 아플까 봐 힘을 빼려고 해도 의지대로 잘 되진 않았습니다.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수 있으니 3분 정도 대기했다가 귀가하라고 하시더군요. 그새 뻐근해지는 팔을 부여잡고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다가 이상 없음을 확인받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주사를 맞기 전에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는데 돌이켜보면 문진표를 작성할 때 '예'에 체크한 기억이 딱히 없습니다. 주사나 약 부작용이 있던 적도 없고, 꾸준하게 먹어야 하는 약도 없고, 당장 임신 가능성도 없고, 알레르기도 없거든요. 물론 저도 선천적으로 약한 부위가 있긴 하지만,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으니 평균 이상의 상태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늘 무신경하게 '아니오'를 체크해 왔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아빠는 오래전이지만 위암 수술을 하셨고, 엄마는 신장이 약해서 꾸준히 약을 드시고 있거든요. 그럼 엄마, 아빠는 이런 문진표를 작성할 때 '예'에 체크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조금 복잡한 감정이네요.
사실 저는 꽤 자주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언니와 나이 차이가 큰 늦둥이라 또래보다 부모님의 연령이 조금 높은 편이에요. 딱히 그걸 실감하면서 살진 않았는데 요 몇 년 사이 두 분의 아픈 모습을 계속해서 보게 되어 흐릿했던 상상이 자꾸 선명해지는 기분입니다. 저는 양가 할아버지의 얼굴을 몰라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어요. 대신 할머니 두 분은 그래도 제법 오래 뵈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얼굴까지 기억나고, 친할머니는 목소리까지 기억이 나요.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하얀색, 병실, 옥 침대 따위가 떠오릅니다. 친할머니는 갈색, 꽃, 오래된 장롱 무늬가 떠오르구요. 시간이 흐르며 차차 잊혀지는 기억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런 상징물은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조카들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떤 느낌으로 기억될까요? 언젠가 태어날 수도 있는 내 자식들에겐 또 어떤 상징으로 남게 될까요?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꼬리만 했던 상상이 몸통만큼 거대해집니다. 저는 잡념이 정말 많은 편이거든요. 그래서 때로 부모님의 장례식을 생각하는가 하면, 때로는 내 장례식을 생각합니다. 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죽음 이후의 삶을 믿는다 해도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속이 따끔거리고 울컥하는 기분이 들곤 해요. 그 이별 뒤의 삶은 지금과 같지 않을 테니까요.
나는 부모님에게 여전히 많은 것이 서툰 어린 아이고, 부모님은 내게 여전히 무한한 도움을 주는 조력자입니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좋고, 사랑받는 것이 좋고, 나의 존재를 기꺼워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보다 어리고 젊어 성미가 불 같을 때는 서로 싸우고 상처 입히고 다투고 화내는 일도 많았지만, 요즘은 그런 시간도 아깝게 느껴집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특별함을 넘어 유일무이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관계 같아요. 어쨌든 삼십 년을 함께하며 절연하는 일 없이 여기까지 왔으니 평균 이상의 팀워크지 않나 싶습니다. 언젠가 두 분이 삶을 멋지게 졸업하고 먼저 떠나실 때가 오면 꽃다발 안겨드리고 웃으면서 인사하고 싶네요. 나는 또 새로운 팀과 새로운 팀워크를 다지면서 열심히 살아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로 이번 설날에 부모님과 해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어 머리를 굴려 보는 중입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면 그때 한 번 더 글을 써 볼게요.
저와 조카입니다. 어릴 땐 상당히 외향적인 성격이었다는데 사진을 보니 그 성격 그대로 자랐다면 지금의 나와 사뭇 달랐겠다 싶네요. 부모님에게 저는 아직 저런 이미지일 것 같습니다.
초상권 보호를 위해 조카는 뒷모습만 등장했습니다. 본집 근처 풍경인데 아직까지 논밭이 살아있어 여름에는 푸른 벼의 물결을, 가을에는 잘 익은 노란 물결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 논들이 흙과 콘크리트로 덮여 전부 사라질 수도 있겠죠. 그래도 아직까진 여름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가끔 들리는 고라니 소리는 아직도 적응이 어렵지만요.
조카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오는 걸 좋아합니다. 시골에 살다가 도시에 가면 처음 보는 것들에 입이 벌어지는 것처럼 도시에만 살던 아이가 시골에 오면 그 나름대로 처음 보는 것들이 놀랍고 신기할 거예요. 조카가 잘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을 공유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잊었던 것도 떠오르는 경우가 있거든요. 훗날 이 아이의 기억으로 인해 나의 기억 또한 화상도가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뭔가를 진지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보다 떠오르는 것을 쭉 적어 나가니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곳에 기록을 많이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이버 타임캡슐을 차곡차곡 채우는 기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