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전쟁, 그리고 우리의 전쟁
“신이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4년이라는 전례 없는 고통과 유린의 시간 끝에 그렇게 재기 넘치는 맺음말을 생각해 내다니, 그건 오로지 절대적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올 초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곧 끝나겠거니 싶었다. 2003년의 사스, 2009년의 신종인플루엔자, 2015년의 메르스도 단기간에 정리되었고, 이번의 코로나도 그 연장선에 불과하겠거니 하고 쉽게 예단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코로나가 전세계적인 유행병이 되면서 1918년의 스페인 독감과 비교하는 기사를 접하면서, 약 100여년 전 스페인 독감이 당시 식민통치를 받던 조선까지 강타했고, 이를 제때 제대로 대응한지 못한 일본 식민 정부에 대한 불만이 3.1.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내가 배운 역사가 (혹은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단편적인지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고,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세르비아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의 저격 사건으로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1918년 독일 항복으로 종전은 알고 있었는데, 스페인 독감의 1918년을, 1차 세계대전과 연결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 것이다. 책에 기술된 대로 스페인 독감은 전쟁 때문에 생긴 질병은 아니었으나, 전시 환경은 이를 전 세계적 유행병으로 발전시켰고, 총알 하나 쓰지 않고 5,000만명이 죽임을 당했다. 어느 병사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갔더니 가족이 모두 전염병으로 죽고 없더라는 얘기도 있었다.
과학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새 왕좌에 군림하게 되었는가 하는 과학적 관점보다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유럽의 시대상과 각각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건이 더 눈에 들어왔다.
독일에서는 독일 지성인들이 독일군이 자행한 루뱅에서의 파괴 사건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93인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과학자들은 전쟁 전 자신이 연구하고 있던 것이 무엇이든 자발적으로 그것을 전쟁에서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응용하는 일이 흔했다. (전쟁 전 자기학은 연구했던 사람은 라디오 안테나를 만들었고, 운동학 전문가는 이제 탄도를 계산했다.)
질소고정법을 개발해 인조비료의 대규모 생산을 가능케 해 수십 억 인구를 먹여 살린 프리츠 하버는 최초로 화학무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영국의 봉쇄령으로 식량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독일에서는 1916~17년사이에 약 12만명의 독일인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식량가격을 끊임없이 솟구쳤다. 베를린에서는 대규모 식량 시위가 매일같이 일어났고, 때로는 전면적인 폭동으로 발전하자, 군은 경제를 장악한 후 농장에서 바로 식량을 압수하여 배급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효율적인 배급을 기대했으나, 군이 가장 좋은 식량을 가져가고 철도를 독점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이와 중에 베를린 시민들은 1918년 봄에도 진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했고, 거의 모든 이가 전쟁에서 승리가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언론이 극심한 검열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97년 IMF차관을 받기 전까지도 나라 재정이 건전하다는 기사를 계속 내보낸 한국 언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영국에서는 독일 연극은 취소되었고, 그레셤 대학은 독일인이 왜 계속 수업을 받느냐고 묻는 격양된 편지를 받았다. 해군 고위 장교였던 바텐베르크 공자 루이스는 게르만족 특유의 이름 때문에 강제로 퇴역했다. 작가 글레이엄 그린은 길거리에서 독일산 개 닥스훈트가 돌에 맞아 죽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프리츠 하버가 화학무기를 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에서는 전쟁에서 과학자의 쓸모에 대해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이 두 국가의 과학자들은 전쟁전의 국제 적인 협력은 깡그리 무시하고, 서로를 폄하하면서 (독일인은 과학연구에 적합하지 않는다는 둥, 가급적 영어 논문을 인용하지 말라고 하는 둥), 교류를 끊어 버렸다. 계엄이 선포되고, 배급되는 식량의 질과 양이 떨어지고, 대안의 대안 식품이 나오는 난리통에, 대부분이 맞다고 생각하는 하나를 위해 돌진하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의 주변의 맹목적인 애국심에 끌려 다니지 않고, 사회주의적인 시각을 고수했다거나, 에딩턴이 퀘이커 교도로서 양심적인 병역 거부자가 되어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것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원래 보헤미안 기질이 있었던 아인슈타인은 원래 타고난 기질상, 남에게 쉽게 휩쓸리는 성격의 사람은 아니라고 느껴졌고, 에딩턴은 영국에서 퀘이커 교도로 살면서 처음부터 주류 사회에 소속되지 않음으로써 주류의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두 사람이 신념을 지켜 나간 과정, 그리고 그럼으로써 이루어 낸 과학적 성과 -상대성 이론의 확증-은 분명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약 100여년 전에 있었던 타국간의 전쟁을 책으로 읽으니, 당시의 광기어린 애국심과 맹목에 대해 제 3자의 입장에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혹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갈등은 현재를 사는 내 것으로 가져온다면 나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소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는 분명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작년의 No Japan운동만 생각해 봐도, 한국내 모든 일본 기업의 생산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 진짜로 한국에 유리한 것은 맞나? 끊임없는 역사 왜곡과 망언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일본에 대한 감정과 대응, 한한령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에 대한 감정과 대응은 충분히 객관적이고 타당한가? 아니면 최소한 객관적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유리하기는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