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범인을 검거하니 조현병 환자였더라, 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아기를 방치했다는 류의 사회면 뉴스를 볼 때는 제외하고는 우울증이니 조울증이니 하는 세상은 내게 너무 낯설었고(때때로 내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더라도), 따라서 관련 지식도 일천해서 신문기사와 뉴스에서 종종 접했던 세로토닌, 코르티솔, 도파민, 옥시토신 등등 어려운 이름이 척척 나오길래 정신 질환 역시 여타의 다른 병처럼 이미 과학적으로 또는 의학적으로 원인이 규명된 질병인 줄 알았다.
현재까지의 뇌 연구만으로는 유전병인지, 아니면 뇌의 어느 특정한 부분에서 결함이 있는지 등등의 정확한 원인을 파헤치지 못했다는 것도 (내게는)놀라운데, 전세계 70억 인구 중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인구가 3억 명 정도 된다는 점,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질환이 개개인의 인생에 아주 깊게 뿌리 내려 일상을 그토록 심하게 뒤흔들고 있다는 점도 너무 놀라웠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은 의사의 처방약이다. 의사들이 처방하는 약은 확실한 효과를 담보하지 못한 채 가설을 바탕으로 처방되며, 약을 삼킨 환자의 용태에 따라 가설이 확실시 되거나 부작용이 발견되기도 한다(여기에 자본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는 제약회사의 행태는 논외로 하자).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19세기 중반부터의 쌓인 연구 결과와 현대의 과학이 접목되어 점점 더 정교한 연구, 처방, 수술이 가능하다는 점과 예전에는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으며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었거나 숨기기에 급급했을 문제가, 이제는 사회적인 질병으로 용인되어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정도일 것 같다.
이 책 자체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정신과 약이 발견된 과정 및 치료 과정을 순차적으로 서술한, 마치 개론서 같은 느낌의 책이지만, 내게 이 책은, 비록 정신과 약을 먹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아슬아슬하게 삶의 균형점을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는 저자의 고군분투기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이 그렇듯이 학교를 졸업했고, 결혼해서 자녀를 두었고, 심리학자로 밥벌이를 하며 가정을 꾸려나갔었다. 다만, 10대 시절에는 자신의 팔에서 솟구치는 피에 매료되어 장난처럼 정신 질환과 놀아났고, 19실에 처음으로 정신과 약을 처방 받아 복용 했고, 그 후에도 35년 간 상황에 따라 처방약을 바꿔가며 약을 복용해 가면서 번갈아 나타나는 강박장애, 범불안장애, 조증과 우울증에 맞서고 있었다. 35년간 처방 받은 12가지 약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했고, 최근에 처방 받은 약은 식욕을 늘려 몸무게를 불리고 당뇨병을 초래하기까지 했고, 종국에는 남들보다 빠른 기억력 장애 증상까지 보이고 있다.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갖가지 색깔의 환영들, 갑자기 다이아몬드처럼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돌맹이들을 집 안 곳곳에 수집하고, 했던 얘기를 처음인양 반복하는 행동들. 약으로 인한 무기력함, 메스꺼움. 겪지 못해 감히 예단하지는 못해도 이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얼마나 힘들게 한 걸음씩 내 디뎠을지 쉽게 수긍이 된다.
그럼에도 저자는 책 곳곳에 사람에 대한 따뜻함, 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적고 있었다.
“우울증이 떠난 자리에는 감사한 마음이 남기 때문이다. 인생은 새싹, 잎사귀가 된다. 어떤 약도 이 도취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최고의 순간이다. 가장 인간답고 가장 건강한 자신을 찾았기 때문이다. 조용히 축하하라. 앞에 나가 노래 부르라.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비록 죽어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비록 부작용은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준 현재의 약에 감사를 하면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높이는 치료법으로 사이키델릭에 기대를 걸면서 글을 마무리 한다. 의사와 환자는 환자의 마음을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보고, 의사의 역할은 안내자로 바뀌기를, 그래서 현재의 약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수 많은 정신장애를 치료하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