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 답게 만드는 것들

by 재스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부모형제만 내가 선택할 수 없을 뿐(물론 내가 이건희 회장님의 딸로 태어나 사는 것과 우리 부모님 딸로 태어나 사는 것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나머지 모든 부분은 어떤 중간 과정을 거쳤든 최종 선택은 내가 했으며, 따라서 현재의 내 모습은 과거 내가 했던 무수한 선택들의 총합의 결과고, 선택도 내가 했으니 결과 또한 마땅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것이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 내 머릿속 뇌의 DNA와 태아프로그래밍, 미생물총 등등이 처음부터 끝까지 조종한 거라고 하니…… 조금 허탈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DNA의 지배를 받는 다는 측면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의 차이가 있을뿐, 사람 또한 여러 동식물과 곤충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수만가지 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럼에도 인간이 문명을 만들고 일구어 내 2021년까지 살아오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만하게 지구 환경까지 파괴해서 다른 종에게 폐를 끼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DNA.png 이 DNA가나자신이라는것이좀슬프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최근 과학 연구의 결과에 의하면, 내 생각과 행동들, 특정 음식에 대한 선호도라든지, 중독에 쉽게 함락되는지 아닌지, 혹은 내가 폭력성을 띄는지 아닌지 등은 모두 내 조상님들로부터 물려받은 DNA가 결정하고, 심지어 물려받은 DNA는 태아시절 엄마의 영양상태, 약물이나 알코올의 복용 여부, 엄마가 받았던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다시 프로그래밍이 되어(이를 태아 프로그래밍이라 한다) 내 생각과 행동들을 결정한다. (물론 아빠도 정자를 통해 태아 프로그래밍에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은 스트레스, 학대, 가난, 방치의 경험은 DNA에 상흔을 남겨 여러 세대에 걸쳐 부정적인 방향으로 되물림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다행스러운 점은 비만, 우울증, 폭력적인 유전자를 가진 모든 사람이 그것을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유전자의 작동 방식과 상호작용하는 외부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며(외부환경과 유전자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을 ‘후성유전학’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미생물총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고 하니, 아무리 우리가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되어 유전자의 조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외부 환경과 우리 몸 속의 미생물 총에 대해서는 우리의 노력을 쏟아 부을 수는 있겠다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 사회가 쏟아 부은 노력이 성공했다는 증거가 소개되어 있다. 1990년대 아이슬란드의 십대 청소년 중 40% 이상이 음주를 했고, 20% 가까이 마리화나를 경험했다. 이에 1990년대 아이슬란드 관료들은 ‘자아발견 프로젝트 (Project Self-Discovery)’를 시작해 국가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청소년들은 피아노 연주, 조각, 탱고, 무술,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고, 생활 기술 훈련에도 참여했고, 부모들은 십대 청소년을 키우는 팁을 가르쳐주는 학습에 참여했다. 밤 10시 이후에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십대 통행금지령까지 시행한 결과 위의 비율이 5%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또 다른 사례는, 콜로라도대학교 건강과학연구센터의 데이비드 올즈의 연구이다. 그는 뉴욕하층계급에서 처음으로 아기를 가진 산모 400명을 연구에 참여 시켜, 참가자들에게 임신 기간 동안 약 10차례에 걸쳐 가정 방문 의료 지도를 받게 하고, 아이가 태어난 후 2년 동안에는 약 20차례 방문 해 엄마들 자신과 아기의 적절한 영양에 대한 상담과 양육기술에 대한 교육을 받게 했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가 15세가 되는 13년 후 아이들의 진척 상황을 살펴보니 이러한 간단한 가정 방문 지도만으로도 후속임신 수, 사회복지 서비스 이용 횟수, 아동학대 및 방치, 범죄행동이 극적으로 줄었다. (이것이 1997년에 발표된 연구라 하니 정말 놀랍다)


이제 우리는 중독과 폭력의 문제가 비단 개개인의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며, 개개인의 유전자가 많은 부분 관여하고 있다는 점(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에 개개인의 어린 시절 받은 학대나 방치가 맞물려(이 또한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폭발하는 뇌관 같은 것이고, 또한 사회가 다 같이 노력해서 이 부분을 경감시킬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면, 이 지점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혹은 폭력을 사용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들을 의지박약이라고 깎아 내릴 필요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잘 못된 행위를 무조건 적으로 감싸 안기도 힘들다. 일단 반사회적 행동은 반사회적 행동이니까. (아직까지 폭력성향이 혹은 중독성향이 발현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이기적인 발언일 수 있지만, 최소한 나는 변명의 여지 없이 잘못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극단으로 치닫는 빈부 격차* 속에서 재정적인 격차가 교육, 건강, 기회(일할 기회, 공부할 기회) 등 모든 것의 격차를 극심하게 벌리고 있는 상황에서, 가난은 영양실조, 아동 방임이나 아동 학대, 비만(하류 계층일수록 비싸지만 신선한 식품대신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패스트 푸드를 많이 먹는다) 등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각 나라가 아이슬란드 정부처럼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거나 데이비드 올즈가 한 것처럼 하류계층에 가정 방문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사회가 하지 못한 노력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기에 결국 이 문제 역시 개인의 형편에 따라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저자의 말처럼, 과학의 진보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인간을 조종하는 것들의 실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류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나를 움직이는 이 끈의 매커니즘에도 손을 대서 나 자신을 재창조하려고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런 모든 연구 결과물들의 혜택마저 있는 계층과 없는 계층이 받아들 일 수 있는 한계가 그어져 있는 듯 해서 좀 씁쓸하기는 했다. 그것이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일지라도.


* 2020년 1분기 미국 연준의 소비자재정조사에 따르면, 미국 상위 10%가구가 전체 부의 68.7%, 하위 50% 가구는 전체 부의 1.4%를 소유하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연구에 의하면, 한국도 2013년 기준, 만 20세 이상의 성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상위 10%가 전제 자산 66.4%를 하위 50%가 전체자산 2%를 소유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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