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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그루 Aug 10. 2021

유년 시절은 목구멍에 칼 같아서…

드라마 <너는 나의 봄> 강다정의 대사 중에서

TVN <너는 나의 봄>

드라마 <너는 나의 봄>에서 강다정 씨의 대사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에서 그런 말 나오거든요.

유년 시절은 목구멍에 칼 같아서 쉽게 꺼낼 수가 없다고.

올해는 그 칼을 꺼내는 해인가 봐요. “     


유년 시절은 목구명에 칼 같아서 쉽게 꺼낼 수가 없다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 목구멍이 금세 따끔따끔해져 오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에 시작된 나의 ‘눈칫밥 역사’를 떠올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식습관이 망가졌고 살이 찌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발단이 엄마가 여섯 살인 나를 외갓집에 맡겼던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집안 사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과 남들 다 있는 아들 못 낳았다고 구박하는 시어머니 등살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다. 그래서 나와 동생 중에 내가 당첨이 되어 외갓집으로 보내졌다. 그때부터다. 나의 눈칫밥 역사는.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외삼촌 식구들(외삼촌, 외숙모, 딸 하나)과 이모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내가 밥을 먹으려고 네모난 상에 둘러앉았다. 외할머니가 나에게 ‘얼른 먹자’라고 하면서 숟가락을 쥐어 주셨는데 그때 바보같이 그만 울음보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날 아침에 말 잘 듣고 울지 말고 잘 있으라고 당부하며 뒷모습을 보였던 엄마를, 그 어린 나는 원망스러웠나 보다. 아니면 제발 나도 데리고 가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 서러웠을지도... 그 뒤로 나는 다시는 울지 않았지만(아마도) 밥을 먹을 때마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밥이랑 내 밥그릇 바로 앞에 있는 반찬만(그게 무슨 반찬이든 간에) 먹었다. 반찬을 골고루 먹으려면 눈을 들어 상 위의 반찬을 둘러봐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다. 맛있게 먹기보다 먹어야 하니까 먹었던 날들을 보내다가 어느덧 초등학교 입학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드디어 나는 엄마 아빠 동생이 있는 우리 집으로 갈 수 있었고, 말했다시피 초등학교 입학을 하자마자 나는 살이 찌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두 식탁으로 모여 봐!> 글 마크 패롯, 그림 에바 알머슨, 옮김 성초림, 웅진 주니어

그림책 <모두 식탁으로 모여 봐!> 속에는 음식을 대하는 여러 유형의 아이들이 그 나름의 방식대로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메바 알머슨의 포근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나는 그림책 속 늘 새로운 것을 맛보는 탐험가 유형을 보면서 내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면 저 탐험가처럼 음식재료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실험 정신으로 맛보고 싶다. 또는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이 많이 먹는 대식가 유형처럼 막 먹어 보고 싶기도 하고(그러면서 살은 안 찐다), 유기농 주스가 아니면 안 마시고 식사초대가 반갑지 않은 까탈 대마왕처럼 하나하나 성분을 따져 가며 깐깐한 건강식을 하고 싶기도 하고, 새초롬한 미식가처럼 최상의 맛을 찾아 나서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음식을 즐기기는커녕,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조차 잘 몰랐다. 그러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고, 싫어하는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당체 알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목구멍에 칼 같은 이유는 그 이야기가 어린 시절에 마무리되지 못하고 아직도 여전히 이어져 오기 때문일 것이다. 내 눈칫밥의 역사만 봐도 초등학교 때 다시 시작되고 끝나는가 싶더니 엄마가 돌아가신 그 해에 다시 시작되고 이제는 끝나겠지 했더니 결혼을 한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아직도 목구멍이 따끔따끔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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