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싸움 그놈의 싸움.

by kasory

학기 초에 규칙을 정하면서 아이들이 칭찬판을 제안했다. 뭘 하면 칭찬을 받냐 했더니 수업시간에 선생님 기분 상하는 행동하지 않으면 된단다. 그런 행동은 구체적으로 뭐냐고 하니 '책 잘 펴놓기, 떠들지 않기, 자세 바르게 하기' 등등의 것들이었다. 이것들은 수업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기본적인 예의일 뿐이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한 방법은 아니라고 말했더니 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 굽히며 잘 보이려고 할 필요없으니, 나한테도 그런 의미를 담아 행동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칭찬판은 하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난 뒤 아이들은 다시 칭찬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반 전체가 함께 무언가를 해내면 협동심도 기를 수 있고 좋은 습관을 만들 기회도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고 어떤 항목들을 담을지 논의하다 '싸움하지 말기'가 나왔다. 나는 개인의 싸움이 전체 상벌을 이야기할 문제가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싸움은 정말 나쁜 것이냐고도 물었다. 반 전체의 칭찬을 위해 개인이 불편함을 참는 것은 옳은 것이냐는 질문도 했다. 아이들은 아니라고 했고 이 항목은 지워졌다.



우리 반은 정말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싸운다. 싸움없이 넘어간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엊그제는 하루종일 몇 건의 싸움을 중재하느라 녹초가 되었고 집에 가자마자 쓰러져 잤는데도 다음 날까지 눈이 잘 안 떠졌다.



나는 에너지 쭉쭉 빨리게 피곤하지만 그럼에도 싸움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싸우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눌러놓는 것보다는 털어놓고 싸워볼 줄 아는 사람이 삶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믿으니까.



다만 감정소모적인 싸움보다는 상대에게 나의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받아들일 줄 아는 단계까지 나아가길 바란다. 근데 그거 진짜 너무 심각하게 안된다. 사실 나도 안된다.



평생의 공부겠지만 평생 해나갈 일이라면 일찍 시작해서 좌충우돌 경험 쌓고 다듬어갈 기회 많이 만드는 게 더 좋은 일일 것이다. 그걸 어떻게 바라볼 지에 대한 방향성만 잘 잡아주면 그렇게 이글아이로 분노 폭발하던 아이도 눈빛이 바뀌고 차분해지니 그때부터 진짜 대화를 시도해보면 되고.



하지만..너무 싸우니까...그만 싸웠으면 좋겠어 얘두롸. 가끔 좀 참았으면도 좋겠어...나도 너네랑 싸우고 싶을 때도 있는데...참는다는 것도 알아주면 좋겠지만...뭐 암튼 남은 시간도 잘 싸우며 건강하게 잘 성장해보자.
#오늘도또싸웠어


2019.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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