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쎄요.

by kasory

3교시 체육시간에 아이들을 강당으로 보내고 쉬고 있는데 여자아이 둘이 나를 찾았다. "선생님, 저희 둘 사이에 문제가 있는데 지금 교실에서 얘기 나누고 싶어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문제가 뭘까 했더니 "저희 둘다 '기가 쎄서' 의견충돌이 잦고 늘 좋은 결론이 나지 않아요. 결국 한 사람이 포기하거나 서로 사과없이 안좋은 감정만 쌓이는 경우가 많아서 학교에서 같은 모둠으로 지내는 게 불편하고 어려울 때가 많아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를 들면 생일잔치 음식으로 주먹밥을 만들 때 A는 볼에 밥을 다 넣고 한꺼번에 양념을 넣어 뭉치자는 입장이었고, B는 각자 가져온 밥통 안에 양념을 담아 각자의 주먹밥을 만들자는 입장을 내세웠는데 둘은 끝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고 다른 아이들은 말없이 누구든 입장을 정하면 따르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상황이 몇 번씩 반복되었던 모양이다. 둘도 이런 얘기를 털어놓으며 말하면 별 거 아닌데 어떻게 좋게 의견을 모을지 방법을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들과의 이런 상담은 일상이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 지내면서 갈등없이 사는 건 비현실적이지. 오히려 갈등을 통해 아이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일도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무척 고마웠고 이런 상황에서의 관계 회복이 훨씬 더 수월하니 그 또한 감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에 대한 이야기보다 아이들에게 더욱 해주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기가 쎄다'는 말. 기가 쎄다는 건 자기 주장 강하고 옳고 그름 판단 명확하여 소위 '고분고분'하지 않고 평화로운 우리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 아니 '여자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요즘은 자기 주장 확고하게 할 말 하는 멋진 여자들을 보며 '걸크러쉬'라고도 하지만, 그 또한 그동안 그러지 못했던 사회적 분위기의 특수성이 키워낸 용어이기도 할 것이다.



두 아이들은 자신의 자아가 강하고 때문에 호불호도 명확했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는 방식이 있으면 적용하고 싶어했고, 서로의 의견을 굽히진 않았지만 막무가내식이기 보다는 나름의 근거들이 있었다. 다만 그 의견들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절충할지에 대한 방법을 아직 올바르게 배우지 못해 어려울 뿐인 건데, 그것을 자신들이 '기가 쎄서' 이렇게 대치상태에 있다고 스스로 정의내리는 것은 싫었다.



우리가 불편하게 여겨야 할 유형은 '본인의 주장이 바깥쪽(대의/정의/합리성)을 향하는 것이기 보다는 안쪽(자신의 이기심/탐욕)만을 향하는 사람, 타인의 이야기에는 귀 닫고 자신의 이야기가 최고로 중요한 사람, 니 얘기는 다 틀렸고 내 얘기만 맞는 사람'이지 '자신의 색깔이 명확하며 옳고 그름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그 불편유형은 남녀노소 불문.



아이들이 꼭 알았음 했다. 기가 쎈 게 아니고 너희의 성향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선생님은 너희의 목소리에 큰 도움 받을 때가 많아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상대의 의견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지의 방법은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되는 거라고. 자신을 스스로 부정적 틀에 가두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힘주어 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2018.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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