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노크하기.

by kasory

"존재가 싫어요"


모둠활동을 마치고 아쉬운 점은 없었냐는 내 물음에 A는 짝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말문이 막혀 몇 초간 멍했다. 그 짧은 순간,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화를 내야 할까, 어떤 말부터 꺼내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저 아이는 왜 그런 말을 했지 등등.


우선 두 아이를 따로 불러내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A가 그런 말을 한 건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모둠활동 과정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거나, 이전 학년에서 서로 불편한 사이였던 것이 이어졌거나, 무엇이든 이유가 있어 한 말이겠거니 싶었다. 아니, 사실 그랬으면 했다. 원인이 명확한 문제가 이야기를 풀어가기엔 좋으니까.


그러나 A의 발언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이유가 없다 했다. 인과론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와장창 깨졌고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그러한 발언이 상대에게 어떤 기분이 들게 하는지, 이유없이 존재에 대한 부정을 내뱉는 건 옳지 않다는 교과서적 지도부터 시작했다. 그러자 A는 그때부터 입을 꾹 닫고 한없이 귀찮고 지겨운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딱 꽂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는 철벽수비에 들어갔다.


무얼 물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A 발언 속 존재가 내가 된 것 같았다. 말을 하면서도 그 어떤 말도 이 아이에겐 통하지 않을 것을 너무 잘 알겠어서, 그러나 대화의 마무리는 있어야 하니까 결과를 알면서도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온몸으로 받아내는 방법밖엔 없다니, 참 아팠다. 그러나 더 슬펐던 건 아이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고 쓸모 없어지는 내 자신을 또 다른 내가 지켜보는 일이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괴로움으로 그 시간을 고통스럽게 견뎠다. A는 내게 끝까지 상처를 주고 가버렸고 난 내내 초라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A의 전 담임선생님은 A가 무척 방어벽이 쎈 아이라 했다. 남들이 자신을 파고 들어오는 걸 싫어한다고. 그때부턴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며, 그 아이에겐 논리도 힘도 그 무엇도 잘 통하지 않는다 하셨다. 그저 푸근하게 품어주고 때론 농담으로 툭툭 지적해야 그나마 서로 편하지 그렇지 않으면 1년 내내 고생일 거라며 나를 다독여 주셨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게 푸근하게 대하는 건데. 난감했지만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면 시도해야만 했다.


다음 날도 A는 친구들에게 험한 말과 행동을 했다. 어쩔 수 없이 A를 불렀고 전과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마음 속으로 푸근하게, 푸근하게를 수도 없이 되뇌였다. A가 입만 닫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소기의 성과는 거뒀으나 A는 또 상처를 주고 떠났다. A의 행동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니까 울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웃지도 못해서 일류는 실패.


나는 지난 이십 몇 년동안 포커페이스가 굉장히 잘 되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내 감정이 상대를 대하는 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표정 잘 숨기는 대단한 연기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너무 티가 나는 사람이어서 오히려 문제였다. 이런 바보같은 착각 속에서 살다니. 있었던 걸 없었던 걸로 절대 못하는 투명한 인간의 한계는 감정의 불투명함이 필요한 순간에 너무도 치명적이다. 이 한계가 올해 A에게 투명하게 들킬까봐, 그래서 우리가 내내 상처투성이로 서로를 미워할까봐 나는 벌써 고민이 됐다. 이 아이를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


착잡한 마음으로 오늘 친구네 아기들을 보고 왔다. 5개월, 9개월 된 아가들은 목을 가누기도 힘겨워 자꾸 고개가 내려가고, 옹알이로 어떻게든 감정을 표현하려 애쓰고, 밥을 먹는 건지 뱉는 건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밥을 먹고, 기둥을 잡고 열심히 일어나 주변을 탐색했다. 어른들은 그런 아가를 보며 행동 하나하나에도 박수를 보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 시도 아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존재 자체가 사랑인 아가들을 보며 자꾸 그 아이 생각이 났다. 말 못하는 아가들의 마음은 어떻게든 살펴주려 애쓰면서 대화가 가능한 존재에겐 그만큼의 마음도 내어주지 못하다니.


아가를 대하듯 그 아이의 언어도 이해하려 애써봐야지.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1년이 될 것 같다. 그치만 놓고 싶진 않다. 나를 위해서도 걔를 위해서도. 상처받고 무너져 버리는 건 일류가 아니다는 아니고. 나와 결이 맞는 상대만 품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내가 아이를 선택할 수 없었듯 아이도 우리 반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니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열쇠는 우선 어른인 나에게 있을테니 내일도 전쟁터에 결연한 의지로 들어가 보겠다. 출근!

2019. 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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