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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un 04. 2018

나의 해외 출산기

오스트리아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오늘로 출산 35일째. 벌써 한 달하고 다섯날이나 지났다니.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했건만, 출산 후 내 체감 시계는 나이먹는 속도의 두배쯤은 빠르게 감겨가는 것 같다.

요즘들어 이 정도는 메모없이도 기억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일들에서 몇 번 낭패를 본 이후, 더 늦기 전에, 너무 강렬했기에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할 때, 나의 출산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번이 첫 출산, 그것도 오스트리아라는 해외에서, 현지에 가족이나 친구없이 출산을 해냈다. 해냈다 라는 단어는 무언가 보람있는성취했을 때 사용할 만한 단어이지만, 나에게 출산은 스스로 대견하고 칭찬해 주고 싶은, 대단한 경험이었다. 

예정일은 5월 8일. 막달에 이르러 체중도 너무 늘고, 다른것 보다 풍선처럼 부푼 배 때문에 바닥에 놓인 물건을 줍지 못할 지경이라 37주가 넘어간 시점부터 이제 좀 나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37주 마지막 산부인과 검진때 의사선생님에게 조기출산의 가능성을 물어봤지만, 자궁경부는 아직 열릴 기미가 없다고, 첫 출산은 원래 예정일보다 늦는 경우가 많다며 단호박같은 대답만 들었었다. 스스로도 이슬이라던가, 가진통이라던가 하는 출산의 징조를 느끼지 못했기에 느긋하게 출산준비를 하고 있던터였다.

4월 30일 오후.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운동을 다녀오고 친구와 보이스톡으로 수다를 떨며, 그날따라 배가 묵직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오후 4시 쯤엔 압박감이 더해졌지만, 출산 징조 아니냐는 친구의 걱정에 이 정도 아파서 아기가 나오면 출산 힘들단 소리도 못할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초산모들은 진진통을 알아채기 힘들고, 가진통에 병원을 찾는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를 숱하게 들은터라 스스로 더욱 '아니겠지' 라는 자기암시를 강하게 걸고 있었는 듯 싶다. 하지만 모든 초산모들에게 일러두고 싶다. 37주 이후엔  설사 가진통같더라도, 유난 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면 바로 병원을 찾으시라고.

남편이 오는 7시까지 잦아지는 통증을 느끼면서도 나는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하고, 출산가방도 쌌다. 7시에 집에 온 남편에게 '나 오늘 아기 낳을지도 몰라' 라며 명랑하게 농담을 던지고, 피자를 시켜 영화를 보며 먹기까지 했다. 영화 중반 쯤, 이건 참아선 안되겠다 싶을 정도로 배와 허리가 아팠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가진통이 아닐까 라는 생각때문에 쉽게 병원행을 결정하지 못했다. . 

첫 출산, 그것도 한국이 아닌, 오스트리아에서의 출산이기 때문에 시간이 날때마다 인터넷에서 현지 출산 후기들을 열심히 읽어봤었다. 오스트리아의 출산시스템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산부인과 의사보다 산파의 주도로 진행된다. 출산전문 간호사를 헤바메 라고 부르는데, 출산시 병원에 상주하는 헤바메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산모가 많을 경우 한 헤바메가 여러 산모를 담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개인 헤바메를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는 개인 헤바메를 둘지 말지 고민하다가, 출산 하루 전, 그러니까 4월 31일에 개인 헤바메를 접선하고 계약을 맺었다. 헤바메를 구하고 바로 그 다음 날 출산했으니, 우연치고도 굉장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밤 9시 경, 병원은 안가더라도 헤바메에게는 더 늦기 전에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거니, 웃으며 아직 너무 이를 것이라며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면 다시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을 참고 이건 설사 진통이 아니더라도 아기에게 무슨 사단이 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워있기도 앉아있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검사나 받고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첫 출산인만큼, 여느 다른 엄마들처럼 나에게도 일종의 희망사항들이 있었는데, 바로 자연분만, 무무통주사, 그리고 모유수유의 성공, 세 가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랐던 초산모였기에 품을 수 있었던 희망사항이었지 싶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남편에게 나는 제왕절개를 해야겠다고 몇 번이나 말할 정도로 에상과 상상을 넘어서는 통증이었다면, 그 고통이 설명이 될까.

밤 10시 반, 병원에 도착하자 병원 헤바메는 서있지도 못하는 나에게 통성명을 하고 악수를 건낸 뒤, 태동검사를 해보자며 검사실로 데려갔다. 간간히 신음소리를 뱉어야 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헤바메는 초산이냐고 물었다.  헤바메의 느긋한 태도와 뉘앙스에서 단순히초산, 경산의 정보를 묻기 위함이라기보다, 나를 유난 스러운 산모처럼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헤바메는 아주 여유롭게 20분이나 태동검사를 진행했다. 그때까지 남편과 헤바메는 남북정상회담 얘기, 독일 통일 얘기 등 별 잡담을 했는데, 그 얘기를 못 들어줄 정도로 내 상태는 힘에 벅찼다.  

아기가 아주 건강하네요.

20분의 검사 뒤 헤바메가 나에게 해 준 말이었다. 그때 내 상태는 통증이 오지 않을 때에도 내진의 촉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내진을 하던 헤바메는 살짝 놀라며 '미세스 김, 80프로가 진행됐어요' 라며 한 두시간 안에 아기를 만날 수 있을거라고 했다. 

나를 엄살쟁이로 보는 그 태도도 싫었지만 참았고, 난 아픈 와중에 잡담이나 하고 있는 남편도 꼴미웠지만 참았었는데, 그 모든 것이 참을 필요가 없었던 일들이었다. 나는 '진짜로' 아파도 되는 출산 임박의 상태였던 것이다.

외국에서의 첫 출산에 대한 공포때문에 너무 많은 정보를 찾아본 것이 오히려 해가 되었던 케이스였다. 출산 후기들 중 많은 경우는 병원에 너무 일찍가서 낭패를 봤었지,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첫 출산은 보통 진통이 오고도 평균  7~10시간이 걸린다기에 그렇게나 빨리 출산이 진행되고 있었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까지도 힘들었지만, 진짜 통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분만실로 옮겨진 뒤 헤바메를 기다리는 동안,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옷을 적실 정도로, 구토가 올라오는 통증이 2,3분 간격으로 왔다. 무통주사를 놔달라는 말에 병원 헤바메는 개인 헤바메가 오면 상의해보라고만 하고 주사도 안줬다. 그때 사실 출산이 너무 진행되어 주사를 놓을 수 없는 상태였는데, 내 심리적 안정을 위해 그렇게 말해 줬던 것 같다. 새벽 12시, 헤바메가 도착했고, 수중분만실로 나를 끌었다. 헤바메가 오기 1분 전까지 난 단 한번도 수중분만을 고려해보지 않았었는데, 그 당시엔 이유를 묻지도 거부하지도 못하고 얼떨결에 수중분만으로 출산을 하게 됐다. 신기하게도 물에 들어가자마자 중력의 차이 때문인지 허리가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처음 몇 분이고 곧 다시 진통을 하긴 했지만, 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병실에서보다 훨씬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 속에서 한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토하고, 제왕절개 하달라고 하고, 정신없었던 시간이었고, 이제 나는 못하겠다고 이제 그만하겠다고, 신음소리 낼 힘마저 없어졌을 때, 헤바메는 두 번 진통 안에 아기가 나올 거라고 했다. 정말이냐고 묻는 말에, 만약에 2번 안에 아기가 안나오면 자기를 죽여도 좋다는 말에, 마지막 힘을 짜내보았다. 두 번 중 첫 번째 진통에서는 아프기만 할 뿐이었고, 그 다음 진통에서 무엇인가 아래에서 회전하며 미끄러지는 느낌으로 머리가 나왔다. 욕조에 기대어 있는 자세였기에, 아기 머리가 나오는 모습, 이어 몸이 빠져나오는 모습, 헤바메가 아기를 건져 올리는 모습까지 모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빨간 핏덩이 속에서 건져올려진 물에 불은 듯한 3160그램의 생명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수중분만을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출산 순간의 과정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헤바메는 바로 내 가슴에 아기를 안겨주었다. 그때까지도 울지도 않던 아기는 칠팔초 뒤 내 가슴 안에서 으앙하는 첫 울음을 뱉었다. 코 입 흡입도, 울음을 뱉게 하는 두드림도 없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회복실에서 아기의 키와 몸무게를 재고 천으로 감싼 뒤, 아기는 다시 내 품으로 왔다. 사전에 모유수유를 원한다는 정보를 알고 있던 헤바메는 태어난지 삼십분도 지나지 않은 아기에게 젖을 물렸고, 나는 시키는대로 먹는지 안먹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수유를 시작했다.

10시 반 병원 도착에서 새벽 1시 13분 출산까지 세 시간도 걸리지 않았기에, 가족에게 '나 병원가요'라는 메세지도 없이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보내게 됐다. 상황을 바꿔본다면 부모닝들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열시간 스무시간 진통하는 산모들에 비하면 나는 순산이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순산이라도 불러야 하는 것이라면, 출산이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 것인지. 

모성을 임신 순간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건데, 모성이란, 다른 모든 사랑의 경우들 처럼, 대상을 향한 시간과 노력, 정성을 다했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감정이라 생각된다. 부성보다 모성을 더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 역시 쉽게 얻어진 결과보다 고생 뒤에 오는 결과물이 더 달콤하듯, 고통의 인내 끝에 만나게 된 존재에게 가지는 엄마의 특별한 사랑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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