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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ul 04. 2018

미안해, 엄마가

금둥이 육아일기

 엄마라는 이름은 출산한 여자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 단어가 주는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는 벅찬 역할이기도 하다. 아직 제출하지 못한 나의 석사 논문에서는 '모성 이데올로기' 에 대해 한 챕터 분량을 다루고 있다. 이전까지 육아와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분위기에서 루소 이후 성실한 어머니 상이 유행처럼 퍼졌고, 자연적 모성은 헌신적 모성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불성실한 엄마를 사회적으로 단죄하는 죄책감을 조장한다는 내용이다.

 아기를 낳기 전 '엄마는 이래야 해'라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부들부들 떨었건만, 생물학적 '엄마'가 된 지금, 나 역시 그 이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녀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자녀도 미안할 필요없는 쿨한 엄마가 되고 싶었건만. 이제 막 제 손발 알아보는 작은 꼬물이 앞에서 왜 나는 이렇게 미안해 지는 것일까.


 경험없는 엄마 손에서만 길러지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쁘다 소리 듣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일가친척없는 외국 땅에서 혈혈단신 살아가게 할 것이,


 하얀 피부, 콧대 높은 외국인 틈에서 까만머리 외국인으로 살게 해야 하는 것이,


 엄마아빠가 쓰는 한국말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고,


 쌀밥에 반찬 먹는 식습관마저 또래들과 같지 못할,


 타인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다름'을 경험할 아이에게 너무도 미안하다.


 다른 출발선상에 있다는 것이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두드러지는 것이 엄마의 보는 눈인가 보다.

 머리로는 상황보다 키우기 나름, 미안해말자 라고 생각하려 하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것은, 인간적인 연민때문일까, 나 역시 엄마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통 엄마이기 때문일까.


 이제 갓 두 달 된 아기에게 이렇게 미안해지는데, 아이를 키우며 얼마나 더 자주, 더 많이 나쁜 엄마, 미안한 엄마가 될지. 엄마가 주는 따뜻함과 헌신, 그것이 환싱이자 여자에게 부여한 하나의 속박이었다 한들, 그 사회에서 길러진 나 역시 그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이 미안함이 당당함이 되는 일은, 내가 나를 속이지 않는 이상 힘들겠지만, 지금의 감정마저 언젠가 추억이 되리라 믿는다.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루는 행복 속에서 켠켠히 불안히 쌓여가는 이 감정 또한 나와 금둥이 우리의 것이기에 담담히 받아드리려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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