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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an 26. 2022

반려인의 3가지 의무로 만든 '천국' 오스트리아

'동그람이: 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 입니다. 

올해 2월에 만 4세가 되는 '김수지'양은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고 비엔나에서 자란 비글 믹스견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에서, 그것도 반려동물에 대한 반려인의 책임을 무겁게 묻는 오스트리아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하기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모든 것에서 무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가족이 떠오르는 향수병과 길어지는 해외생활의 우울감으로 인터넷 강아지 사진을 찾아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시기, 수지는 우연한 계기로 만난 지금의 ‘개딸’님이시다. 

수지는 쥐히터(Züchter)라고 불리는 전문 브리더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단일 개량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전문 브리더를 통해 강아지를 입양한다. 수지를 넘겨준 브리더에 따르면, 엄마는 잘생긴 비글이지만 아빠를 알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엄격하게 수정을 관리하는 브리더 시설에서 수지의 탄생은 사고 혹은 기적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강아지를 좋아할 뿐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 견종이란 없었던 나에게 믹스견이라는 사실은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가슴팍으로 뛰어들어오는 이 주먹만 한 똥꼬발랄을 만난 순간부터, 나는 수지에게 간택된 것이었을지도. 

고백하자면, 수지와 나의 만남은 동물 입양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 1순위인 귀여워서 데리고 온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대가는 입양 다음날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지는 비글 엄마에게서 태어났지만 아빠는 알 수 없는, 믹스견이었다. 물론 아무 상관없었다. 귀엽잖아!

인식칩 없는 반려동물? 적발 땐 벌금형

반려동물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유럽의 반려동물 문화와 제도는 오랜 기간 축적되고 수정된 결과물이다.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는 나의 경험상 유럽권 안에서도 손꼽히게 철저한 규칙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반려동물의 권리와 복지 보장을 위한 책임의 대부분은 반려인에게 지워있는데, 그 첫 번째 의무가 반려동물 등록이다. 오스트리아의 모든 반려동물(특히 강아지)들은 예외 없이 고유번호가 매겨진 인식칩을 내장형으로 이식해야 한다. 인식칩 없는 반려동물은 적발 시 벌금형에 매겨진다. 고유번호는 시술받은 동물병원을 통해 국내 시스템에 등록되고,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유럽 전역에서 추 적 가능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고유번호는 반드시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데, 분실 시 반려동물을 찾기 위함뿐만 아니라, 고유번호를 통해 입양신고 및 세금을 납부, 분실이나 사망 신고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식칩 시술 과정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강아지의 입양부터 사망까지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발생하는 반려인의 두 번째 의무가 바로 신고와 세금납부이다. 

오스트리아에는 동물복지부(Veterinärdienste und Tierschutz)라는 동물관련 부서가 따로 있는데, 흔히 MA60이라 불린다. 모든 반려동물은 14일 이내에 온라인으로 MA60에 등록돼야 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매년 세금을 납부한다. 첫 번째 강아지의 경우 1년에 72유로(약 9만3,000원), 2번째 강아지부터는 마리당 105유로(13만4,000원)을 납부한다. 반려동물이 2마리 이상이라면, 납부해야 하는 세금은 1마리일 때의 2배 이상이다. 동물병원에서 접한 이 엄청난 소식에 잠깐 패닉에 빠졌었지만, 지금은 반려동물 세금정책에 매우 동의하고 있다. 

세금, 보험... 그리고 이어지는 생활 내내 수지에게 드는 돈은 만만치 않았다. 물론 비용이 든 만큼 평안함은 보장된다.

다양한 예방접종은 강아지와 나의 건강을 위해 당연한 일이기에 이제 먹이고 입히는 것 말고 돈 드는 일은 더 없을 줄 알았던 그때, 세 번째 의무사항이 우편으로 날아왔다. MA60으로부터 온 편지로, 수지의 손배보험을 가입하고 증빙서류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우리 애처럼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가 어디 있다며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으로 몹시 구시렁거렸지만, 모든 조치에 법적 근거를 명시하고 공문서화하는 오스트리아 시스템상 재판을 하지 않을 거라면 관청의 요구를 이길 방도는 없다. 

손배보험이 의무화되어 있는 만큼, 오스트리아의 반려동물 보험상품 역시 엄청나게 다양하다. 반려동물 보호상품은 크게 건강보험과 손해보험으로 나누어지고, 사람보험과 마찬가지로 기간과 보장범위에 따라 비용 차이가 크다. 건강보험의 경우, 정말 사람보험처럼, 강아지(생후 2년 미만)의 보험료가 노견보다 몇 배 저렴하다. 보장범위가 큰 보험은 중성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시술과 관리, 예를 들어 스케일링, 수술, 입원비 등이 커버된다. 손해배상은 타인의 신체 와 재산에 입힌 손해 배상의 경우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보험을 이용할 일은 없다. 건강보험에 비해 가입비가 매우 저렴하고, 기본보장 금액 역시 높은 편이다. 수지는 4년째 사고 비스름한 일에도 개입된 적이 없어서 사실상 돈을 허공에 날리는 기분이 들지만, 보험이라는 것이 원래 이런 것 아니겠는가.

만만찮은 비용, 치른 만큼 누린다

강아지를 기른다는 것은, 사람을 키우는 것과 여러 면에서 닮은 듯하다.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하고, 먹이고 입히는 비용의 갑절이 또 다른 이유로 들어간다. 물론 사람을 키우는 것이 몇 십, 몇 백배의 힘, 노력, 비용이 더 들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게 쉽다는 생각에서 비극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싶다. 오스트리아에서 수지를 키우게 된 뒤, 나는 주변인들에게 반려동물 입양을 권하지 않는다. 노력, 책임감, 이런 추상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세금과 보험, 의무 예방접종 등의 비용 역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수지를 내 가족으로 국가에 등록하는 과정을 겪으며 '부모의 책임'을 느꼈다.

수지를 입양한 뒤 한 달 사이에 일어난 행정절차들을 해결하는 데에 상당한 마음고생과 경제적 출혈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보장된 이후 우리의 삶은 평안하다. 보험이 있기에 행동에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고, 세금을 내기에 누릴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우스갯소리로 자식은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 하는 것처럼, 수지도 엄마 월급에서 착실히 본인 몫을 떼어가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이 바로 나를 키울 때 내 부모님의 마음이리라. 

자기 얘기하는 줄도 모르고 소파에서 세상 편안하게 코를 골며 주무시는 개딸님을 보니 뽀뽀하러 가지 않을 수가 없어 서둘러 첫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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