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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an 26. 2022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개셔니스타'들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강아지들은 귀엽고 예쁘지만, 내 강아지가 내 눈에 조금 더 특별히 예쁜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고슴도치 엄마’는 사람 엄마뿐만 아니라 개엄마, 개아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개엄빠들은 예쁜 아이를 더 예쁘게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장모종의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털관리와 미용을 시켜주고, 단모종 역시 털이 빽빽하도록 영양에 신경을 쓰고, 눈물자국 등이 없게 깔끔하게 관리해준다. 비글믹스인 수지는 털 색이나 생김새는 비글의 외모를 가졌지만, 대체 누굴 닮은 것인지 가슴과 목덜미 털은 장모종 빗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길다. 다행히 묶거나 미용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어서, 때때로 빗어서 관리해 주는 정도이다.

유럽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외모 치장을 덜 한다고는 하지만, 빈 사람들은 주변 국가에 비해 퍽 세련된 편이다. 멋을 즐기는 파리 토박이들을 파리지앵이라고 부르듯, 빈 사람들에게는 비너린(여자), 비너른(남자)이라는 말을 붙여주는데, 그 안에는 세련된 빈 사람이라는 느낌이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태어날 때부터 입은 털옷 한 벌로 평생을 보내는 다른 동네 반려견들보다, 빈 반려견들의 패션은 화려하다. 

하지만 멋부리다 더워 죽는다. 복슬복슬한 모피를 일년 내내 입고 다니는 반려견들에게 아무리 예쁜 옷과 아이템도 여름에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제 세상을 만난 듯 방한기능과 귀여움 효과를 동시에 누리는 멋쟁이 반려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겨울을 떠나보내다 문득 아쉬운 마음에 사진첩을 뒤져 비엔나 길거리를 수놓았던 ‘개셔니스타’(개+패셔니스타)들의 사진을 꺼내봤다. 



1. 귀여운 외모 속 상남자 개의 '배트맨 패션' 

마리아힐페 거리에서 만난 소형견. 한성질 하는 까닭에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빈의 가로수길 격인 ‘마리아힐페 스트라세(Straße · 거리)’에서 만난 작고 귀여웠던 아저씨 개. 귀여운 외모와 달리 사진 찍는 내내 한 성질을 보여줬던 ‘상남자’다. 따뜻한 느낌의 검은 니트에 노란 배트맨 무늬로 포인트를 주었다. 히어로룩으로 본+인의 거친 내면을 잘 표현한 룩. 사진을 찍으려는 내내 화가 나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1번 모델.



2. 수지와의 '빨간 맛' 커플룩

멋쟁이 '휘핏'(왼쪽)의 패션은 수지의 옷과 커플룩이었다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던 날, 빈의 쇼핑몰 '쇼핑시티 수드'(Shopping City süd · SCS)에서 만난 멋쟁이 ‘휘핏’. 붉은 점퍼로 수지와 커플룩을 선보였다. 수컷임에도 불구하고 빨간색이라는 과감한 컬러선택으로 컬러의 유니섹스를 몸소 보여준 ‘멋남’이었다! 날씬한 체형에 비해 약간 큰 듯한 오버사이즈를 택해 긴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줬다. 점퍼의 고어텍스 소재는 단모라는 겨울에 불리한 신체 조건을 잘 보완했다. 퍼펙트한 겨울 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천방지축 강아지의 일회용 패션   

9개월령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몸집의 '아스트라'. 반려인의 헌 옷을 리폼조차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딱 맞았다고 한다

동네 훈데존(오스트리아의 반려견 놀이터)에서 만난 9개월된 강아지 '아스트라'. 9개월령이라는 나이를 느끼기 어려운 신체사이즈지만 귀여운 후드와 다리 롤업으로 커버했다. 쫑긋한 귀와 9개월 강아지다운 재기발랄함이 후드와 매우 잘 어울린다. 입고있는 회색 후드는 사실 반려인의 옷을 그대로, 리폼조차 하지 않고 입었다! 아스트라의 패션 소화 능력에 놀랐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다. 눈 비온 뒤 젖은 땅에서 한 번 놀고 나면 이 귀여운 면 재질 후드는 눈물을 머금고 폐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 


4. 놀이터에서 '회춘'한 노견의 패션은?

유럽에서 가장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 방한 방수 기능이 있어 흙탕물에서 뒹굴어도 될 정도다.

사진 속 주인공, 올해 13살 된 노장견 ‘렉스’가 입은 고어텍스 재질의 바람막이는 빈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을/겨울 패션이다. 아예 입혀보지 않은 반려인이 있을지언정, 한 번만 입혀본 반려인은 없다는 반려견 패션의 잇템(It item)이다. 방한기능은 물론이고, 온갖 흙탕물로부터 반려견을 지켜준다. 눈 비오는 날 산책을 시키는 반려인에게는 전신 목욕의 수고를 덜어주는 획기적인 아이템이다. 

렉스는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검은색과 붉은색의 투톤 바람막이를 입어 한층 젊어보였다. 훈데존 안에서도 암컷 반려견들을 쫓아다니며 건강함을 과시했다. 

매년 추운 겨울이지만, 지난해 겨울은 전에 없이 추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국도 러시어보다 추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 역시 기상이변으로 인해 빈은 올해 3월에도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가 계속됐다. 얼어버린 눈이 채 녹지 않은 사진들 역시 믿기 어렵겠지만 3월에 찍은 사진들이다. 사람도 강아지도 이렇게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다녔던 게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느새 이번주 빈의 날씨는 ‘봄이 왔어요’ 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새 봄, 새 털옷을 갈아입을 수지의 털갈이를 기다리며, 올해는 꼭 로봇청소기를 사겠다 마음먹고 검색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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