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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an 26. 2022

오스트리아는 살인진드기 '젝켄'과 전쟁 중!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독일에 위대한 철학자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쁜 날씨 탓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맑은 날이 없어 실내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 철학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독일의 옆 동네 오스트리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1년 중 쨍쨍한 햇빛을 볼 수 있는 기간은 채 절반 정도 밖에 안 된다. 봄이 시작되는 4~5월부터 여름이 끝나는 9~10월은 햇빛이 내리쬐는 성수기 시즌으로 사람과 동물 모두 열심히 야외활동을 즐긴다.

이 기간에 수지와 나 역시 미리 햇빛을 받아두기 위해 부지런히 밖으로 나돈다. 평일에는 주로 집 근처 큰 공원을 찾는다. 내가 살고 있는 빈은 도시 곳곳에서 공원들이 잘 조성돼 있어, 집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 거리에 풀냄새를 맡으며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로 조경도 잘 돼 있고, 인공호수는 강아지들 더위를 식히기 좋다. 주말에는 빈 외곽 지역의 숲을 자주 간다. 빈에서는 산이 드문 대신 울창하게 우거진 숲들이 국립공원으로 많이 지정되어 있다. 자연 그대로의 보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스트리아의 환경정책 덕분에 빈 인근 숲에서는 아직도 노루, 여우,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들이 출범할 정도로 생태환경이 살아있다. 

즐거운 산책길에 숨은 복병 '젝켄'   


빈에는 화창한 날씨를 즐길 공원이 많다. 그런데 잠깐... 수지야, 풀밭에서 뒹굴면 위험해!


푸르른 녹음 우거진 숲은 반려견은 물론 사람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들이 장소지만,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바로 ‘작은소참진드기’ 다. 이 진드기는 포유류의 몸에 붙어 기생하며 보렐리아균을 숙주에게 전달해 신체 여러 기관에 병을 일으키는데, 뇌로 전이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한국에서 살인진드기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이 벌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젝켄(Zechen) 이라고 불린다. 수풀이 우거진 곳이면 도시의 공원이든 교외의 숲 속이든 가릴 것 없이 젝켄 위험지역으로 봐야 할 정도로, 오스트리아에서 젝켄은 흔하고도 위험한 여름 해충이다. 젝켄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 유해하지만, 특히 반려견들이 젝켄의 공격에 취약하다. 수풀과 땅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고, 바닥에 몸 비비기를 좋아하는 강아지들 습성에 젝켄이 쉽게 달라붙고, 온 몸에 빽빽한 털 때문에 피부에 박힌 젝켄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빈에 살고 있는 반려인들은 여름이 오기 전 젝켄과 전면전을 준비한다.    

'살인진드기'로 알려져 있는 젝켄(왼쪽)과 오스트리아의 젝켄 위험구역. 빨간 색으로 표시돼 있다. zecken.de

젝켄으로부터 반려견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접종이다. 의무는 아니지만 연1회 예방접종으로 진드기에 물려도 병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예방주사는 발병을 막을 뿐, 진드기 자체에 물리지 않게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집에서 생활하는 반려견이라면, 몸에 붙은 젝켄을 반려인에게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반려견 뿐 아니라 반려인 역시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몸에 바르거나 붙이는 약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목걸이형이나 액체형 약품을 강아지 피부에 발라주는 방식인데, 진드기뿐 아니라 벼룩, 이 등 다른 해충의 접근 역시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약 성분이 독해 반려인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또 반려견과 집 안에서 피부를 맞대고 부벼가며 살아가는 반려인에게 약 성분이 묻을 수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장 원시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산책 후 꼼꼼하게 빗으로 털을 빗어가며 젝켄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내 주변 반려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예방접종이나 예방약을 사용한다고 해도, 젝켄의 공격으로부터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젝켄이 몸에 붙어왔나 확인하는 것은 여름 철 반려견 건강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매일 몇 번씩 온 몸을 확인하기 힘들다면, 젝켄이 좋아하는 부위만이라도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젝켄은 말랑말랑한 피부를 좋아하기 때문에, 귀 뒤, 사타구니, 목덜미와 겨드랑이만이라도 확인해 주는 것이 좋다. 젝켄이 발견되면 절대 손으로 터트려서는 안되고, 전용 도구를 이용해서 피부 속에 박힌 젝켄의 입까지 완벽하게 제거해야 한다. 


예방접종? 민간요법? 최고는 꼼꼼한 빗질   


오스트리아에서 젝켄 퇴치를 위한 민간요법으로 쓰이는 '호박 목걸이'를 수지에게도 가끔 채운다.

앞서 말한 세 가지 방법 외에 오스트리아에서는 젝켄 퇴치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호박보석을 이용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호박보석을 이용한 목걸이를 착용한 반려견을 많이 볼 수 있다고 들었다. 호박은 면역력 강화, 염증 감소, 병충해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해, 액세서리용 뿐 아니라 민간요법으로 흔하게 쓰이고 있다.  

반려견을 위한 호박 제품들도 동물용품점이나 작은 보석공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호박은 고가의 보석이라는 생각 때문에 반려견 목에 호박 목걸이가 과도하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려견용 호박 목걸이는 사람용보다 저품질의 제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실제로 여름철에는 생각보다 아주 많은 반려견들이 이 호박 목걸이를 차고 숲과 들을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호박목걸이는 어디까지나 ‘민간요법’ 일 뿐, 그 효과가 객관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수지는 젝켄의 공격에 털을 꼼꼼히 빗질하는 '전수조사'와 호박 목걸이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하고 있다. 호박목걸이는 어디까지나 예방용이기 때문에, 약을 쓰지 않는 우리의 경우에는 털 전수조사가 필수적이다. 호박목걸이를 늘 착용하지만, 평균적으로 여름 한 철 동안 서너번 정도 젝켄을 달고 집에 온다. 집에 있을 땐 자기 몸의 일부분을 나와 꼭 맞대고 있어야 하는 수지의 습성과 수지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힐링하는 나의 버릇 때문에 다행히 젝켄을 발견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젝켄 위험 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


빨리 제거해 준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젝켄은 반려견은 물론 심할 경우 반려가족까지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위험한 해충이다. 때문에 간혹 젝켄의 위험 때문에 반려동물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무리한 주장이 나오기도 하지만 젝켄의 공격대상은 모든 포유류로,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젝켄으로부터 안전하지는 않다. 적절한 주의와 조치만 기울인다면 사람과 반려견 모두 건강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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