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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an 26. 2022

오스트리아 '동물용품점'에서 떠올린 한국의 펫샵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반려견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의 ‘사람’스러움에 놀랄 때가 많다. 한 번 가봤던 길을 척척 앞장선다던가, 이름 별로 장난감을 구별한다던가, 내 기분에 따라 우울해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내 새끼!’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 반려견의 표현력과 인지력은 3~5살 아이 정도 수준일 뿐이라는 걸 실감할 때가 종종 있다. 정말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난감한 상황을 마주하는데 ‘밥 잘 먹는 예쁜 아이’ 수지는 보통 먹을 것과 관련해서 떼를 많이 쓴다. 식당에서 자꾸 의자에 앉으려고 한다던가,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들어가려 목줄을 잡아당기는 경우들이다. 먹을 것 외에 요즘 한 가지가 더 생겼는데, 바로 수지의 ‘쇼핑 따라다니기’ 이다.


요새 산책만 끝나면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고 떼를 쓰는 수지 때문에 난감할 때가 있다.

가게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수지가 원래 쇼핑을 좋아하는 아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지는 반려동물용품점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게다가 최근 동네 산책길에 대형 반려동물용품점이 생기는 바람에 참새가 방앗간 앞을 지나듯 거의 매일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에는 덜 노는 한이 있어도, 쇼핑은 꼭 해야 한다고 목줄을 잡아 당기는 ‘쇼퍼홀릭’(Shopaholic)이 된 수지다. 


대부분 눈으로 훑어보기만 하는 아이쇼핑이긴 하지만, 수지의 쇼핑에는 나름의 체계와 패턴이 있다. 언제나 굉장히 들뜬 기분으로 입장하는데, 마치 한도 없는 신용카드를 들고 백화점에 당당히 들어서듯 자신감이 넘친다. 입구에 들어서면 계산대 언니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인사를 나누고 바로 쇼핑에 돌입한다. 쇼핑은 새 모이를 담아놓은 오픈형 선반대 냄새를 맡으며 시작된다. 곡류와 건초들을 섞어놓은 여러 종류의 새 모이들을 하나하나 냄새 맡고, 신상 건초는 몸에도 비벼본다. 먹지도 못할 것에 왜 저렇게 정성을 들이나 싶을 정도다. 

새 모이용 건초 냄새를 맡고 있는 수지. 나는 맡지 못하는 어떤 흥미로운 냄새를 맡은 건지, 좀처럼 떠날 생각을 안 한다.

한동안 건초를 몸에 비벼대던 수지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다름아닌 고양이 사료 코너. 수지가 가장 좋아하는 코너다. 강아지 사료는 간도 없고 양념도 부족한 사료가 대부분인 반면에, 고양이 사료들은 얼마나 냄새도 좋고 맛있게 생겼는지. 맛있는 사료를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에서 고양이 집사들이 매우 부러워지기도 한다. 포장된 제품들이라도 냄새가 밖으로 새는 것인지, 수지도 고양이 사료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칸마다 정성껏 냄새 맡으며 사료들을 탐구하는데, 어떤 날은 진심으로 하나 사주고 싶을 정도로 공을 들인다. 그러다 보니 반려견 사료 코너에서는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고 수지가 싫어하는 의류 코너 역시 나만 좋아할 뿐, 수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가장 중요한 시간이 남았다. 바로 간식을 고르는 순간이다. 이 가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폴폴나는 강아지 스낵을 알아서 담아가도록 해놓았다. 이 시스템은 효과마저 좋아서, 심지어 강아지들이 먹고 싶은 간식을 직접 고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수지의 ‘최애’ 간식은 빨간 물고기 과자. 과자칸 앞에서 다소곳이 앉아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몸에 좋지 않은 건 알지만 사주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과자 한 주먹을 의기양양하게 물고 나오면 수지의 쇼핑은 끝이 난다.


직접 퍼서 간식을 담은 다음 계산대로 가져가는 '셀프 간식판매대'


맛있고 새로운 냄새들로 가득한, 친구들의 체취마저 묻어있는 반려동물용품점이 강아지들에게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간식이라는 보너스까지 따라오니 말이다. 오스트리아 빈에는 대형 반려동물용품점이 꽤 많이 운영되고 있다. 물론 일반 슈퍼에서도 강아지 건식, 습식 사료와 간식들을 팔고 있지만, 그 다양성이나 제품의 내용면에서 전문점을 따라가지 못한다.

반려동물들을 위한 먹거리, 생활용품, 의약품 등 반려동물들을 위한 물품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반려동물용품점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이 곳에서는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거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반려동물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장소 중 하나는 펫샵이었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주 상품은 바로 ‘반려동물’이다.(내가 ‘반려동물용품점’이라는 긴 단어를 계속 사용한 이유도 펫샵과의 구분을 위해서다) 물론 현재 한국에서 펫샵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대형마트의 반려동물 용품점이나 몇몇 동물병원 등에서는 여전히 동물을 판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동물보호법 일환으로 가축을 제외한 동물의 매매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동물복지청에 따르면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10마리 강아지 중 7마리가 사망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의 강아지 번식장에서 자란 강아지들 건강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과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


반려동물 농장 가 보니…위생 시설 없이 밀집 사육


[앵커] 반려동물을 키우는 국내 인구 천만 명 시대, 관련 산업도 커지고 있는데요. 위생 상태가 엉망인 채로 운영되는 미신고 사육농장들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박웅 기자가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전북

news.naver.com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어린 강아지의 불법 매매를 동물학대 수준의 범죄로 보고 있다. 오스트리아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개별적인 동물거래는 절대 불가하다. 반려동물을 들이는 합법적인 방법은 등록된 브리더인 쥐히터(Züchter), 핸들러(Handler) 등을 통하거나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하는 것 뿐이다. 쥐히터와 핸들러는 관련 교육을 수료하고 교배 및 판매를 허가받은 사람들로,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으며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도 생후 6주 미만 어린 반려동물은 입양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모든 펫샵에서는 철장 안에 꼬물거리는 어린 강아지나 고양이를 볼 수 없다. 나 역시 한국에 있을 때 펫샵 앞에서 넋을 놓은 채 어린 생명들을 구경했었는데, 그 실상을 알게 된 뒤로 그때를 종종 돌아보곤 한다.



어제 늦은 밤 산책에서도 혹시나 동물용품점 문이 열렸을까 신나게 달려가던 수지가 떠오른다. 수지에게 동네 동물용품점이 신나고 즐거운 장소가 될 수 있는 건, 말 그대로 반려견, 반려묘들을 위한 상품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자신과 같은 반려견, 반려묘가 상품처럼 전시되고 거래된다면, 수지는 그곳에서 웃을 수 있었을까.   

온갖 맛있는 냄새가 나는 간식 코너에서 냄새를 맡고, 고른 간식을 설레며 기다리는 수지. 자신을 위한 상품들이 있기에 수지의 쇼핑이 행복하지 않을까.

반려견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표현하는지, 얼마나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사람과 함께 어울릴 수 있고, 동시에 사람으로부터 가해지는 고통과 슬픔까지도 느끼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 동물들은 펫샵을 어떻게 기억할까. 펫샵이라는 곳이 사람의 관점에서 운영되는 반려동물점이 아닌,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가고 싶은 펫샵이 되기를 바라며 쇼핑 후 즐겁게 과자를 물고 나오는 수지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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