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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an 26. 2022

오스트리아에서도 피할 수 없었던 이웃과의 오해와 갈등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한국의 반려견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대중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서 지낼 것 같다. 효율성을 목적으로 하는 아파트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의 사람에겐 적합하지만, 반려견에게는 편안한 공간이라고 보기 힘들다. 땅을 팔 수 있는 흙바닥도 없고 마음껏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닐 만한 공간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목줄 착용, 배변처리 문제 등 반려견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갈등의 여지 역시 생활 모든 곳에서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갈등의 원인은 바로 반려견으로 인한 소음 문제일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보눙' 건물이다. 오른쪽 아래 창을 열고 밖을 보고 있는 사람은 건물의 관리인 '호호 할아버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보눙(Wohnung)이라고 불리는 다세대주택이다. 오스트리아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었음에도 빈은 큰 훼손 없이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보눙 역시 10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로, 빈에서 가장 대중적인 주거양식이다. 우리집 건물은 4층으로, 한 층에 적게는 4가구에서 많게는 6가구가 살고 있다. 보눙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건물 주거인들이 합의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규칙들 중에는 반려동물 거주 금지 역시 포함될 수도 있다. 

다행히 내가 사는 건물에서 반려동물 거주가 금지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수지는 이 건물에 살게 된 첫 번째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반려견이다. 반려견에게 우호적인 오스트리아임에도 보눙 안에서 유일한 반려견 가족인 우리는 불편한 일과 억울한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지금이야 웃으면 얘기할 수 있지만, 그 중에는 나름 심각했던 사건도 있었다.


보눙은 보통 4~5층 정도의 단독건물이기에 경비원이 따로 있지는 않다. 하지만 건물에 따라 ‘하우스 마이스터’라는 관리인 같은 역할을 하는 주거인이 있기도 한다. 우리 건물에는 2층에 사시는 ‘호호’ 할아버지가 하우스 마이스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실제 건물주와 계약을 맺으신 것인지, 아니면 ‘역할’만 하고 계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할아버지의 대부분 일과는 창문 밖을 내다보는 것인데,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하거나, 담배꽁초를 복도에 버리는 일이 눈에 띄면 쏜살같이 달려나가 야단을 친다. 이 ‘깐깐한’ 할아버지 눈에 건물의 첫 동물 가족인 수지가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깐깐한 관리인 할아버지를 녹인 수지의 애교


산책에서 돌아오는 수지를 반겨주는 관리인 '호호 할아버지'. 깐깐한 할아버지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수지의 귀여운 애교도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린 강아지 수지를 품에 안고 집에 오던 날, 당연히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던 할아버지의 눈에 수지가 들어왔다. 할아버지께서는 몇 kg까지 크느냐, 너무 큰 개가 되는 게 아니냐, 짖느냐, 무느냐, 어디서 데려왔냐, 어디서 키울거냐 등등 꼬치꼬치 캐묻고 나서야 마지못해 통과를 시켜줬다.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갈등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수지가 오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우리 골목에 한나절씩 개의 하울링 소리가 계속됐다. 당연히 호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너희 개가 시끄럽다”며 법석을 냈다. 그 소리는 중형견 정도 되는 성견의 소리였고, 수지는 생후 갓 4개월밖에 안 돼 아직 소리가 여물지 않은 아이였지만, 증거가 없었기에 수지 소리가 아니라는 변명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나 역시 매일 창문 밖만 쳐다보며 하울링이 있는 날 할아버지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하울링이 시작됐을 때 내 품에 순진하게 안겨있는 수지를 보고 나서야, 할아버지는 오해를 풀었다. 4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는 소시지를 들고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수지를 기다리는 가장 좋은 이웃이다. 물론 거기에는 프로펠러보다 빠르게 꼬리를 흔들며 할아버지를 따르는 수지의 애교가 큰 몫을 했지만 말이다. 

우리집이 있는 골목 모습. 다양한 상업 시설과 함께 있는 공간이다.


'범인은 바로 강아지!' 무조건 몰아붙이는 이웃


두 번째 갈등은 아랫집과의 소음 문제였다. 이 역시 수지가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불거졌다. 아랫집에서 낮, 밤, 새벽에도 우리 집에서 다다닥거리는 소리가 난다며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 집은 소음의 원인이 수지가 뛰어다니는 소리라고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생각지 못한 층간소음 유발이 미안해서 번번히 사과하며, 바닥에 매트를 깔고, 수지가 지내는 공간을 그 집 면적과 겹치지 않는 곳으로 옮기는 등 노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랫집은 매일매일, 어떤 날은 우리가 모두 잠든 새벽 2-3시에 찾아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후 얼마 뒤, 수지와 함께 며칠간 떠난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이었다. 복도에서 만난 아랫집은 잔뜩 화를 내며 지난 밤에도 수지의 뜀박질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소리가 났을 리가!’ 소음의 원인이 수지가 아님을 확신한 나는 그때부터 수지 탓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했고, 아랫집이 찾아올 때마다 집안을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이미 수지를 범인으로 믿고 있는 아랫집에게 설득은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밤낮 새벽 가리지 않고 우리 집 벨을 눌러대는 통에 서로 경찰을 부르겠다는 수준으로 갈등은 커졌다. 차라리 수지 때문이라면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겠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이사를 고려할 정도로 내 스트레스도 극도로 높아졌다. 

극적인 화해는 뜻밖에도 주민회의 때 이루어졌다. 소음의 원인이 아래 선술집에서 나는 소음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층에 사는 우리 집에서는 소음이 거의 없었지만, 다른 층에 사는 거의 모든 세대들은 그 소리를 문제삼고 있었다. 머쓱해진 아랫집 주인은 자기가 선술집을 박살내겠다는 말로 사과를 대신했다. 



이웃끼리 얼굴 붉히며 경찰 부르지 않으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동주택에서 반려견과 거주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겪은 일처럼, 오스트리아에서도 반려동물, 특히 반려견 소음으로 인한 주민 갈등은 종종 발생한다. 소음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일반적인 규정은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의 소음 발생을 위법적인 행동으로 간주한다. 반려견으로 인한 소음 역시 이 규칙에 적용된다. 그래서 강아지 놀이터도 이 시간 동안은 사용을 제한한다. 밤뿐만 아니라 주말 및 낮에도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의 소음이 발생한다면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소음문제를 신고하기 위해서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 하는데 이 경우 두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 번째, 소음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하고, 두 번째, 소음으로 인해 피해자의 생활공간이 침해 받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두 조건을 충족하고, 경찰에 의해 소음 유발이 증명되는 경우 벌금형을 받게 된다. 

공동이라는 단어에는 생활의 일부를 타인과 공유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아파트나 연립주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려견 문제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이웃과 공유되기에 해결 역시 쉽지 않다. 반려견으로 인한 이웃 갈등의 경험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이웃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웃의 입장에 공감하는 유연한 자세를 취할 때, 상호간 ‘이해’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지 않을 때, 해결 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억울한 일들은 종종 벌어지지만, 이 또한 강아지 엄마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참고 또 참는다. 사람들의 큰 헛기침 소리에도 눈치를 살피는 나의 네발 자녀를 위하는 일이라면 못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선진화된 반려동물 문화를 가진 오스트리아에서도 반려견 때문에 이웃갈등이 종종 생기는 만큼 한국은 이곳보다 반려견으로 인한 이웃 사이의 갈등은 더 심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반려동물 문화가 정착되는 과도기의 성장통일 수 있다. 반려인들이 이웃과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비반려인들도 반려인들을 이해해주며 제대로 된 반려문화가 자리잡는 한국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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