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반려견 수지가 '금지옥엽', '무남독녀'로 지낸지 벌써 4년이 됐다. 귀찮을 정도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외동딸이었건만, 지난 5월부터는 그 지위에 변화가 생겼다. 아기를 낳으면서 수지의 동생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기를 데려올 거야’라는 말을 수차례 듣긴 했겠지만, 이렇게 많은 변화가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아기와 집에 돌아온 날, 일주일 만에 만난 엄마를 본체만체할 정도로 수지의 관심은 아기에게 쏠려 있었다. 하지만 냄새를 맡으며 인사하고, 혀로 살뜰히 핥아주며 애정을 표현하는 수지와 갓 태어난 아기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기를 품에 안고 냄새를 맡게 해줬지만, 조그맣고 낯선 가족의 등장을 받아들이긴 어려웠는지, 수지는 아기 침대 아래서 밤새 울었다. 며칠이 지나 수지는 안정을 찾았지만, 아기를 침대에서 내리기만 하면 ‘나도 볼래!’ 하며 성큼 뛰어드는 바람에 여전히 수지의 접근은 조심해야 했다.
부모인 우리가 힘든 것도 있었지만, 그 상황이 가장 힘든 쪽은 수지였다. 아기의 존재를 인정하긴 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아니었다. 자기만 바라보던 엄마와 아빠가 밤낮 아기만 챙기는 모습에 수지는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반 가족도 아기의 탄생을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던데, 하물며 반려견이야 오죽할까. 수지에게는 갑자기 등장한 아기에게 공간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크게 양보한 것일지도 모른다.
천방지축 수지가 아기가 누워 있는 침대만큼은 뛰어오르지 않고 앞발만 올린 채 차분히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엄마, 아빠의 줄어든 관심, 짧아진 산책 시간 등 수지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했으니 그 모든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게 이상했다. 동생이 생긴 첫째의 마음을 왕위에서 쫓겨난 왕에 빗대던데, 수지도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기에 대한 수지의 감정은 관심에서 질투로, 질투에서 무관심으로,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나도 신경 쓰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단계로 천천히 변했다. 아기가 울면 쪼르르 쫓아와 알려주고, 내가 못 본 척하고 있을 땐 아기 발을 살짝 핥아보기도 한다. 천방지축 뛰어오르던 침대에도 요즘은 앞발만 올린 채 아기를 바라만 보는 것도 수지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아직도 수지의 맘고생은 진행형이겠지만 이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여준 수지가 무척 고맙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와 수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은 아직 많지 않지만,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쯤엔 둘의 관계가 남매 사이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품어보고 있다.
아기와 함께 살기, '교육' 받으면 가능하다
아기의 탄생은 가족에게 큰 기쁨이자 경사이지만, 안타깝게도 반려견에게는 가족을 잃는 일이 되기도 한다. 아기와 반려견을 함께 키우는 일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기와 강아지는 한 집에서 생활할 수 없는 것일까?
반려견 천국 오스트리아에서는 아기와 반려견이 어울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동물 관련 단체와 시에서 운영하는 반려동물 부서에서 아기와 반려견의 공생을 적극 권유하는 동시에 아기와 반려견을 함께 키우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교육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 동물보호소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티어크바티어’(Tierquartier)에서는 반려견과의 생활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는데, 특히 반려견 행동 언어,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 강아지가 적의가 없음을 알리는 몸짓 언어)을 강조한다. 아기와 반려견의 관계에서 특히 어른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아기가 반려견의 카밍 시그널을 제대로 읽지 못해 발생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빈 동물보호소가 운영하는 사이트 티어크바티어의 자료 중 일부.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보면 된다.
티어크바티어에서 제공하는 자료 중 네 개를 가져왔다. 반려견이 아기를 발견했을 때 취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사진에서와 같이 반려견은 상대를 발견했을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두 번째 사진은 반려견이 시선을 피하며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 사진에서 반려견은 냄새를 맡는 것으로 인사를 건네고, 네 번째 사진에서처럼 머리를 들어 아기와 시선을 맞추면 반려견과 아기의 안전한 인사법이 마무리된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보호자는 아기가 큰 행동을 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갑작스럽고 큰 동작은 반려견에게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보건청(Bundesministerium der Gesundheitsschutz und Frauen ∙ BMGF)에서는 반려견 가정 부모들을 위한 안내 책자를 제공하고 있다. ‘아기와 강아지를 안전하게’(Kind und Hund, Aber sicher) 란 이름의 책자에는 아기와 강아지를 함께 키울 때 필요한 정보들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이색적인 부분은 단순히 반려견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조심시켜야 하는지가 아닌, 반려견의 생리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자의 첫 페이지는 반려견 입양시 주의사항부터 시작한다. 반려견의 입양부터 훈련, 아기와 강아지가 안전하게 노는 방법까지 매우 상세하게 어린아이와 반려견의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을 충고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보건청이 제공하는 책자에는 아이와 반려견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카밍 시그널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반려견 훈련소에서도 카밍 시그널과 안전 수칙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빈에 있는 반려견 트레이닝 기관 ‘어린이와 청소년을 의한 반려견 안전 트레이닝’(Hundesicherheitstraining für Kinder und Jugendliche)은 특별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반려견 교육을 진행한다. 이 기관에서 아이들은 반려견에 대한 이론적인 교육, 카밍 시그널, 반려견 공포증 치료, 안전하게 반려견과 생활하는 법, 응급상황시 조치 등 반려견에 관해 정확한 지식을 교육받을 수 있다. 반려견과 가족이 함께 교육받을 수도 있으며 유치원, 학교 등에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교육을 통해 오스트리아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반려견에 대한 존중과 소통을 배우게 된다. 오스트리아 반려견 교육에서 눈에 띄는 점은, 반려견과의 관계를 위한 교육이 반려견을 키우는 가족 구성원 모두를 향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 교육은 모두 반려견의 습성을 이해해서 반려견과 소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동물 중심적인 교육이 반려문화 선진국 오스트리아의 동물보호법을 지탱하는 정신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려견에게는 당신도 아기도 가족이다
반려견을 버리는 일은 극히 일부인 오스트리아에서도 출산 후 반려견을 포기하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조금만 검색해 보면 아기를 낳은 뒤 반려견을 포기하려 한다는 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반려견이 아기에게 위험할까', '반려견이 육아에 방해가 될까'와 같은 고민으로 반려견을 사랑하던 사람들 역시 파양을 고민하고, 일부는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개가 사람과 함께 한 역사는 3만5,000년에 이른다고 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에 대한 호감과 순종이 축적되어 있기에 우리는 개를 또 하나의 가족, 반려견이라고 부르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 가족의 범위에 아기와 반려견의 관계는 제외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빈 대학의 쿨트 코트르샬(Kurt Kotrschal)동물학 교수에 따르면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아기의 정서적, 사회적 발달이 향상된다고 한다. 코트르샬 교수는 강아지와 함께 성장한 '강아지 어린이'(Hundekindern)는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책임감 역시 높다고 말하고 있다.
수지가 많은 부분을 양보해주고, 반려동물 관련 기관의 안내 덕분에 아기와 수지는 많이 가까워졌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 나도 수지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수지와 따로 산다는 생각은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아기의 등장이 수지에게 힘들어 보였고, 가족과 친구들의 우려 섞인 이야기들에 굳게 먹은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접하게 된 반려견 보호소와 보건청의 안내는 매우 큰 도움이 됐다. 아기와 반려견이 함께 있을 때 취해야 하는 반려인의 행동지침이 실제 상황에서 훌륭한 팁이 되었기 때문이다.
각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점은 아기와 반려견의 관계는 반려인에게 달려있다는 점이다. 아기와 반려견 사이의 관계에 무지한 반려인이 아기에게 위험한 반려견을 만든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수지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아직 변화에 적응 중이다. 염려스러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수지가 함께 있어야 우리 가족은 완성된다. 즐거운 순간 수지가 있어 더욱 즐겁고, 행복한 순간 수지가 있어 더욱 행복하다. 반려견이 생각하는 가족의 범주에는 가끔 보는 당신의 친구도, 오래전에 만난 당신의 부모님도,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아기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반려견에게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대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