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여름이 원래 더운 계절이라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역대 최고 기온을 갈아치운 이번 여름은 정말이지 덥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날씨였다. 오스트리아 역시 한국 못지않게 올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차이가 있다면 삼면이 바다인 한국은 습한 날씨인데 반해 유럽 대륙 한가운데 있는 오스트리아는 건조하고 정수리를 태워버릴 것 같은 뜨거운 더위라는 점이다.
사람도 견디기 힘든 여름이건만, 벗을 수도 없는 빽빽한 털옷을 입은 채 여름을 나야 하는 반려견들은 얼마나 힘들까. 수지의 북슬북슬한 털은 너무나도 더워 보였지만 깎아줄 수는 없었다. 개들은 개체에 따라 털이 다시 나지 않기도 하고, 깎고 난 뒤 자라는 털은 모질이 달라지거나 엉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려견에게 털이란 체온을 지켜주는 역할 외에도,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약한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기에, 여름철에 털을 밀고 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아무리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털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지만, 수지의 등을 긁어주다 털 사이로 후끈한 열기를 느끼고 나면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오스트리아에서 사람과 반려견 모두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더위를 피해, 떠나자 강으로!
도나우 강변에서 '강수욕'을 즐기는 빈 시민들의 모습. 곳곳에 반려견과 함께 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빈에서는 일반 가정집은 물론이고 대중교통, 관공서, 학교조차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여름이면 사람은 물론 반려견들도 속속 물가로 모여든다. 오스트리아는 대륙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가 없는 대신 ‘유럽의 젖줄’이라 불리는 도나우 강이 빈을 포함한 주요 도시들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래서 빈 사람들은 여름이면 도나우 강에서 수영을 하거나 수상 스포츠를 즐긴다. 따로 수영구역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강줄기를 따라 곳곳에서 자유롭게 물놀이도 하고 길가에 수건만 깔고 누워 선탠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름이면 해수욕을 하듯,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강에서 ‘강수욕’을 한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아무 강물에나 풍덩 뛰어들어 수영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수영장이 아닌 생생한 자연 풀장에서 수영하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물 색, 물 냄새, 발가락에 느껴지는 진흙, 수영하는 내 옆에 떨어져 앉아있는 갈매기 등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서 유유히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헤엄치는 반려견 또한 그림의 한 부분처럼 당연하게 느껴진다. 반려견과 사람이 함께 물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시비비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수지와 자주 가는 도나우 강의 물놀이 장소는 도나우 인젤(Donau insel) 강둑변이다. 2015년 여름에 첫 물놀이를 할 때는 반려견 출입 금지구역이 따로 있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끔 강 구역마다 반려견 입장을 금지한다는 표시를 볼 수 있다. 주로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얕은 물이 있는 구역이었다. 자연스럽게 사는 방식을 좋아하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인위적인 공간보다 자연을 놀이터로 여기게끔 한다. 이곳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뒹굴며 자라기 때문에, 위생 문제나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어린이들이 노는 구역에는 반려견 출입이 금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대신 반려견이 놀 수 있는 곳을 지정한 구역도 있다. 도나우인젤에서 프로리스도르프브뤼켄 사이 15km 가량, 노드브뤼케와 도나우우퍼 사이 15km 가량은 반려견이 목줄 없이 자유롭게 놀 수 있다.
빈에서 반려견과 함께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수영구역은 6곳이다. 번호 순서대로 힐쉬테텐 호수, 도나우인젤, 알테도나우, 노이도나우, 아스페른 호수, 드라쉐파크 호수
도나우인젤 외에도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물가에는 각각 반려견 금지구역과 수영지역이 지정되어 있다. 빈의 반려견 수영구역은 총 6곳으로 도나우인젤, 알테도나우, 노이도나우, 힐쉬테텐 호수, 아스페른 호수, 드라쉐파크 호수 등이다. 가장 작은 곳은 3,000㎡, 가장 넓은 곳은 5만㎡ 정도가 반려견도 수영이 가능한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빈 시에서 인정한 반려견 수영구역인 셈이다.
"자연에 강아지가 없으면 부자연스럽잖아"
물을 보면 수지는 신이 나서 들어가려 한다. 다만 반려견 물놀이 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반려견 물놀이 구역이 명확히 지정돼 있어서 반려견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과 시비 없이 마음껏 댕댕이들과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얼마나 더웠던지, 물을 보자마자 풍덩 뛰어들어 시원하게 몸을 적시는 수지를 보니 내 마음이 다 시원했다. 수영법 중에 ‘개헤엄’이라는 이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반려견들은 물을 좋아한다. 수지가 수영할 줄 전혀 모르던 강아지 시절에도 주변 사람들은 “모든 개는 내추럴 본 스위머(Natural born swimmer)”라고 말하며 수지의 수영실력을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말한 대로 지금은 ‘물+개’가 되어버린 수지를 보면 물놀이를 할 수 있어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단순히 즐거울 뿐만 아니라, 반려견들에게 물놀이는 생존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조차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속출하는 요즘 같은 더위에 땀도 잘 안 나는 반려견에게 있어 물놀이는 꼭 필요하다.
빈을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이 워낙 긴 까닭에, 강둑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반려견이 들어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부분들도 꽤 많다. 사람들이 이런 애매한 곳에서 수영을 하고 있을 때 수지 또한 '이 몸은 물에 들어가겠노라' 주장하면 더욱 고민스럽다. 수지를 보고 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괜찮다며 수지에게 같이 수영하자 제스처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안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아직 없다. 반려견 엄마 된 죄로 매번 ‘고맙다’, ‘미안하다’며 연신 인사를 했었는데, 한 번은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의 인상 깊은 대답을 들었다.
자연의 일부인 강아지가 자연에서 노는 것은 당연한 일이잖소.
할아버지의 한 마디는 주인 없는 자연을 당연히 ‘사람의 것’으로 여겨왔던 내 사고에 큰 울림을 줬다.
아직 다 가지 않은 더위 때문에 우리는 종종 물놀이를 즐기러 강변을 찾곤 한다.
여름 중 가장 더운 날이라는 말복도 지나 어느새 9월이다. 아직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았지만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슬며시 꼬리를 빼고 있다. 여름 더위에도, 겨울 추위에도 약한 나와 수지는 몇달 뒤면 오늘의 더위를 잊은 채 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될 게다. 그래서 아직은 햇빛이 뜨거운 오늘, 또다시 수지와 함께 강가로 물놀이를 나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