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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an 26. 2022

오스트리아 동물병원에서 겪어본 '과소진료' 이야기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오스트리아 생활은 한국과 다르지만, 그 차이를 가장 크게 실감할 때는 병원을 갈 때다. 오스트리아의 의료시스템은 종합병원은 물론 개인 소아과까지 개인이 전액을 지불하는 사립병원과 의료보험으로 100% 보장되는 공공병원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는 한 가정의학과를 주치의로 두고 한 병원만 이용하게 하는데, 정밀검사가 필요할 때도 우선 주치의의 소견서를 받고 전문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다.


‘동물세’를 받는 오스트리아도 동물의 공공 의료보험은 아직 없어서 동물병원의 의료체계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사람 의료시스템에서 주치의 개념이 매우 일반적이기 때문인지, 오스트리아에서는 대부분 동물병원도 한 병원을 주치의로 두고 평생 이용한다. 주치의 시스템은 인식칩을 이식하는 강아지 시절부터 평생 동안 반려견의 건강 문제를 한 수의사와 공유하기 때문에 주치의가 내 반려견 상태를 잘 이해하고 적절한 조치를 내려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처음 주치의 병원을 선택할 때 보호자의 기준에 맞는 동물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수지의 동물 여권에는 수지의 신상정보(왼쪽)와 각종 백신을 접종한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다.

건강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지이지만, 가끔은 동물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긴다. 여러 나라를 기차로 오갈 수 있는 유럽 대륙의 특성상 반려동물도 외국을 출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유럽의 반려견들은 인식칩을 이식할 때 보통 여권도 같이 만든다. 여권에는 반려견의 이름, 견종, 부모, 반려인 정보뿐 아니라 각종 예방접종 기록도 담겨 있다. 반려견과 해외 출입을 할 때 반려견 여권은 각 국가에서 지정한 필수 예방접종이 되어 있는가를 확인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광견병 백신은 필수다. 오스트리아는 광견병 안전 지역으로 분류돼 있어 오스트리아에서 출국할 때는 광견병 백신 접종 유무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광견병 위험국에서 오스트리아로 입국할 경우에는 백신 유무가 출입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주치의를 의심했던 내 판단은 옳았을까?'


정기 검진 외에는 아주 특별할 때만 병원을 찾는데, 그런 ‘특별한’ 일을 경험할 때마다 주치의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수지가 생후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달마시안에게 귀를 심하게 물렸다. 어디에서 흐르는지 알 수도 없이 피를 뚝뚝 흘리는 강아지를 안고 눈물바람으로 찾은 병원에서 해 준 치료는 소독뿐이었다. 피가 엉겨 붙어 상처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수의사 선생님은 본인이 상처를 드레싱하면 치료비가 더 드니, 집에서 카모마일 차로 닦아 주라는 처방만 주었다. 봉합과 항생제를 생각한 나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우려와 달리 상처는 잘 아물었다.

두 번째로 병원을 찾은 이유는 수지 입술에 생긴 원인 모를 이상한 종기 때문이었다. 보기 흉하거나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사이즈가 천천히 커지고 이빨에 걸려 피가 나는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마취가 필요한 수술이라고 생각했고, 기왕 마취하는 김에 뒷발에 달려있는 며느리발톱도 같이 제거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치의 선생님은 입술 종기는 심한 것이 아니고, 피 나는 것도 큰일이 아니니 그냥 두자고 말했다. 뒷발의 며느리발톱 역시 수의사의 소견으로는 제거할 필요가 없다 해서 그냥 돌아왔다. 과잉진료만 생각하던 내겐 이런 '과소 진료'는 생소했다. 한국에서 살 때는 약물 남용까진 아니지만 ‘아프기 전에 약 먹자’ 주의였기에 주치의 선생님 판단이 미심쩍기도 했다. 결국 미심쩍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대형 동물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흔쾌히 내 바람대로 종기는 레이저로 없애고, 뒷발 며느리발톱도 동시에 제거해준다고 했다. 마취된 수지를 맡기고 나오며 수지를 제대로 돌보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수지가 어린 강아지 시절 달마시안에게 물렸던 상처(왼쪽)와 입술에 난 종기. 이 때마다 주치의 선생님은 대체요법을 권하거나 큰 문제가 아닌 이상 그대로 둘 것을 권했다.

하지만 수지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수지는 피로 얼룩진 수건 위에 붕대를 감은 채 비몽사몽 누워있었다. 더군다나 애초에 상담했던 두 가지 수술 외에 사전에 이야기가 없었던 치아 스케일링과 발톱 손질까지 되어 있었다. 발톱은 피가 맺힐 정도로 짧게 손질되어 있었다. 창구에서 받은 영수증에는 수술, 마치 비용과 함께 발가락 수만큼의 발톱 손질 비용, 스케일링비 등 여러 부가비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뿌듯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 수술이 수지에게 필요했던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수지는 오랜만에 또 병원을 찾게 됐다. 발등에 집착하더니 살갗이 벗겨지도록 핥아댄 것이다. 이번에는 주저 없이 주치의 병원으로 향했다. 주치의 선생님의 치료는 여느 때처럼 간단했다. 찻잎을 처방해 줄 테니 우려내서 상처를 닦아주고, 연고를 발라주라고 했다. 더 핥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목카라를 받고 싶다고 말하자 상처보다 목카라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심할 수도 있으니 너무 오래 채우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수지의 발등 집착은 강아지들의 유행병이라는 '관심병'인 것인지, 주목받을 땐 멀쩡하다가도, 관심이 소홀해지면 절뚝거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와 내 반려견을 잘 아는 주치의 만나야   


대형 동물병원의 수술을 받으면서 뒷다리 며느리발톱은 깨끗해졌지만, 수술 뒤 수지는 한동안 우울해했다.

사람도, 반려견도 병이 들면 의사를 찾는다. 의사의 목적은 병을 낫게 하는 것이기에 어떤 방법을 이용할지는 전적으로 의사 판단에 달려있다. 의사의 진료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입장에서, 대체요법을 말하는 주치의 치료법이 처음에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주치의의 진료로도 그동안 수지는 어떻게든 병을 털어내고 일어났다. 분명한 점은 대형병원이라고 해서 모두 과잉진료를 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병원이라고 해서 모두 수지 주치의처럼 대체요법을 권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 내 경험을 주변의 반려인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들도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또한 이는 어디까지나 내 경험일 뿐, 자연주의 치료법이 적절히 약물과 수술을 병행하는 치료법보다 절대적으로 낫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고통을 표현하기보다 숨기는 반려견의 특성상, 자연치료를 시도했다가 병이 악화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반려인의 입장에서도 소중한 반려견을 아픈 상태에 오래 두는 것보다, 수술이나 약으로 빨리 치료를 해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의료 서비스의 만족도란 보호자와 반려견의 상황과 선호도에 달린 만큼, 본인과 반려견에게 맞는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려견을 기르는 것은 마치 자식을 기르는 것과 비슷하다. 먹고, 입고, 건강하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시켜 주기 위해 반려인으로서 많은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수지의 동물병원 경험은 그 많은 결정들 중, 반려견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일이었다. 이제 만 네 살이 넘어간 수지에게 병원은 더 가까워져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수지를 대신해 점점 많은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 선택에 지금 주치의 선생님이 큰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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