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최근 빈에서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9월 10일 오후 할머니, 할아버지와 산책 중이던 17개월 아기가 개(로트와일러 종)에게 물려 사망한 것이다. 로트와일러의 반려인은 48세 여성으로, 산책 당시 혈중 알콜 농도가 1.4mg/ml로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머리에 중상을 입은 아기는 사고를 당한지 18일 뒤인 9월 28일, 끝내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 가까이 됐지만, 아직까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로 여파는 크다. 동물복지와 생명권을 중시하는 오스트리아 사회에서도 반려견으로 인한 사망 사고에 대한 충격은 컸다. 가장 먼저 공공장소에서 반려견을 부주의하게 방치한 반려인에 가장 많은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로트와일러와 같은 대형견들의 위험성에 대한 공포심이 퍼져 있다는 것도 느꼈다. 사고 직후, 로트와일러를 비롯한 대형견들은 의무 착용이 아닌 장소에서도 입마개를 착용하고, 목줄을 채 1m도 되지 않게 짧게 잡은 채 산책하는 모습 역시 많이 볼 수 있었다.
한 반려견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반려인이자, 6개월 아기를 둔 엄마인 내게도 이번 사고는 충격이었다. 반려견과의 동거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강형욱 반려견 행동교정 전문가가 가장 강조하는 점은, 누구도 반려견으로 인해 다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절대로 아무나 반려견을 길러서는 안 된다."
"그래봐야 동물"이란 가벼운 생각이 부른 참극
비록 수지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다 하더라도 내게는 항상 신경 쓰이는 '아기'같은 존재다.
앞서 나는, 반려견을 기르는 일은 아기를 기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표현을 쓰곤 했다. 어떻게 사람과 동물을 비교하냐는 핀잔도 들었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한 반려견을 만들기 위해선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임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반려견을 좋아하는 주변인들에게도, 반려견 기르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반려견을 통해 오는 기쁨과 즐거움도 크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담과 불편함 역시 그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단순한 사고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봐야 개 한 마리, 그래봐야 동물이라는, 그 가벼운 생각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이 사건을 빌미로 동물과 사람은 같이 살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하는 '도그 포비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쁜 반려견의 뒤에는 항상 나쁜 반려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자신의 반려견을 통제하지 못한 만취 상태의 반려인이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반려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위험한 견종을 반려견으로 입양했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의 '규정 강화'는 사람을 향했다
로트와일러는 빈 시에서 지정한 '리스트훈데'(Listehund · 위험 견종 리스트) 중 하나로, 리스트에 올려진 견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불테리어, 스테퍼드셔 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테퍼드셔 테리어, 나폴리안 마스티프, 마스틴 에스파놀, 필라 브라질네이로, 마스티프, 도사견(Tosa inu), 핏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도고 아르헨티노(아르헨티나 마스티프)
사고를 일으킨 견종인 로트와일러는 오스트리아에서 지정한 위험견종리스트 '리스트훈데'에 등록되어 있다.
비록 리스트훈데에 올라 있지만 로트와일러는 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반려견이기도 하다. 수지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새미'라는 개 역시 로트와일러다. 처음에는 수지와 놀며 큰 입으로 입질하는 모습에 황급히 피하기도 했지만, 친해진 뒤로는 열에 아홉은 수지에게 배를 보이며 져주는 마음 좋은 친구가 됐다. 좋은 반려인에게 잘 교육받은 다정한 새미 덕분에, 그동안 나는 빈에서 만나는 로트와일러를 크게 무서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 리스트에 올려진 견종들은 그 외모와 체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작은 실수로도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의 유명한 반려견 행동교정 프로그램에서 종종 위 리스트에 올려진 반려견들이 나오곤 한다. 프로그램 성격상 문제 있는 반려견 가정만 소개되기 때문이겠지만, 그 개들이 처한 환경이 걱정되곤 했다. 반려견이 채 몇 걸음 걸을 수도 없이 좁은 집에서 대형견을 기르는 가정, 한 집에 몇 마리의 개를 같이 기르는 가정, 하루 한 번 산책도 어려워하는 가정, 크고 우람한 생김새의 대형견을 자랑하기 위한 '악세사리' 쯤으로 여기는 가정들까지... 대부분의 반려견 사고는 이런 반려견에 대한 무지와 책임감의 결여로 발생한다.
반려견에 대한 신뢰는 결국 반려인이 만들어야 한다. 이는 이번 사건을 대하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어린아이의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사고 앞에서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가장 큰 비중을 둔 부분 역시, 반려인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이번 사고를 일으킨 개의 반려인이 음주상태였다는 점, 그리고 반려견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부분에 시민들의 분노와 우려가 컸다. 시민들 반응에 빈 시에서는 반려견 관련 개정 법안을 빠르게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리스트훈데의 목줄과 입마개 상시 착용.
목줄과 입마개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만 필수 착용에서 ‘모든 공공장소에서 항시 착용’으로 강화되었다. 입마개 착용 1회 위반 시 200유로(약 27만원)의 벌금과 반려견 트레이너에게 6시간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2회 위반 시, 시에서 발급되었던 ‘훈데퓔샤인’(Hundeführschein · 위험 견종 소유를 위한 자격증)을 새로 취득해야 한다. 3회 위반 시 반려견은 압류된다. 목줄 미 착용 시에는 100유로(약 13만5,000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2. 리스트훈데 산책 시 반려인 음주 제한.
야외에서 리스트 견종 반려인의 혈중 알코올 농도 0.5mg/ml 이상 적발 시, 최소 1000유로(13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3. 한 번 이상 상해를 가한 모든 종류의 견종을 키우기 위해 견주는 훈데퓔샤인을 취득해야 한다. 시험 응시를 위해선 인증기관에서 최소 20시간의 반려견 트레이닝을 받고,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4. 동물소유금지법 강화
당초 반려견 압류가 불가능했지만, 개정된 법률에서는 반려인의 자질이 의심될 경우, 경찰에 의한 즉각적인 압류가 허용된다.
5. 함께 거주하는 사람 중 동물소유금지 처분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한 집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려견을 소유할 수 없다.
6. 훈데퓔샤인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
자격증 없이 리스트훈데를 소유 시 그동안은 200유로 벌금 처분이었지만, 개정된 법에서는 반려견을 압류하도록 변경되었다.
7. 빈에서는 리스트훈데 교배가 금지된다.(1년 유예기간을 둔다)
8. 훈데퓔샤인 취득을 위한 시험을 강화하고, 2년마다 새로 자격증을 갱신해야 한다.
개정된 법률은 일관되게 반려인의 리스트훈데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나아가 오스트리아 정부에서는 주마다 다른 반려견에 대한 법률을 통일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반려문화가 성숙한 만큼, 반려견으로 인한 피해에 있어서도 강력히 대응하는 빈 시의 조치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일을 이유로 잘 교육되고 선한 영향을 끼치는 반려견들이 편협한 시각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꼼꼼히 읽어보는 기사의 댓글 창에는 법률 강화에 찬성하면서도, 지정된 모든 견종들에게 항상 입마개와 목줄을 강제하는 조치에는 반대하는 의견들도 많다. 반려견 문제 행동의 원인을 반려견 자체보다 반려인에서 찾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듯하다.
놀이터에 나타나지 않는 수지의 '절친' 로트와일러
빈의 반려견 놀이터 '훈데존'에서 만난 수지의 친구들. 견종도 체격도 다르지만 모두들 잘 어울릴 수 있도록 교육돼 있다. 다만 이번 사건 이후로 수지의 절친 로트와일러를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문제의 로트와일러는 현재 빈 시의 한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다. 보호소 측은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려고 하지만, 오스트리아 언론은 사망사고를 낸 반려견 입양을 원할 가정은 없을 것이라 보도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보호소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로트와일러의 행적은 말하긴 어렵다"라고 밝혔다. 비극적 사건의 진짜 가해자인 로트와일러의 견주는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지 또한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반려견을 사랑하는 이유는, 예쁜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반려견은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받기를 갈구한다. 버림받고 학대받았을지언정 다시 꼬리를 흔들며 사람을 따르는 모습은 속이 상할 만큼 답답하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반려견이기에, 반려견의 문제는 반려인이 그 원인일 수밖에 없다.
수지의 절친인 로트와일러 새미는 몇 주 째 반려견 놀이터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나쁜 시선을 받고 싶지 않은,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은 새미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 더 안타깝다. 그 로트와일러가 술 취한 채로 반려견을 방치하는 주인이 아닌, 새미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이번 사건에 대해, 이유를 불문하고 반려인으로서 책임을 함께 느낀다. 반려견을, 특히 대형견을 기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의 부주의와 무책임이 반려견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이나 타인의 소중한 가족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더 고민해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