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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Mar 28. 2018

수지 찬가

사랑하는 나의 반려견에게

 사람들은 그냥 개 한 마리 가지고 유난을 떤다고 할 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수지는 자식 그 이상이다. 좋은걸 보면 사주고 싶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고, 내 손으로 좋은 걸 해먹이고 싶다.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건강하게 뛰어노는 걸 보면 다행스럽고, 쿨쿨 잘 자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내가 잘 먹고 잘 잘 때보다, 수지가 좋은 걸 먹고 편안하게 자는 것이 좋다. 자식을 키운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도 지금의 수지보다 더 예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예쁘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몸 비율이 잘 맞고, 순종의 특성을 잘 가진 것이어서 예쁜 것이 아니라, 백퍼센트 주관적으로 수지는 나에게 예쁘다.     

 동식물을 통틀어 살아있는 것을 처음으로 키워보며 이런 기쁨을 누린다. 개를 키우면서 감사해하고 그를 예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수지를 키우며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것을 진실로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로 햇수로 삼 십여년 동안, 기억이 가능한 이십여년 동안 나는 줄곧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죽고싶다기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몰랐고, 자살을 검색할 때마다 당신의 생명은 소중하다느니 하는 소리는 별로 설득력이 없게 들렸다. 

 살아있다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 존엄하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수지를 키우며 배웠다. 수지의 살아 숨쉬는 표정들과 저녁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그 신비로움과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 먹고, 자기가 정한 곳에서 생리활동을 하는 그 단순한 하루 일과들이 신기하고, 소중하고, 고맙다. 

 살아있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먹고 자고 숨쉬는 내가 존재하는 모든 일분 일초 라는 것과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은 누구에게 보여지고 평가받지 아니하는, 그 사실만으로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수지에 대한 나의 사랑을 자식에 비교했지만, 아직 자녀가 없는 나의 경우엔 내가 경험해 본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비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수지에 대한 사랑을 비교할 인간관계가 없다는 것이 그 생각의 결론이었다.

 

 수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수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아무런 기대도 대가도 바람도 없는 순수하게 사랑을 주기만 하는 대상이고, 또 수지에게서 나는 원망도 미움도 배신도 없는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을 받는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든, 죄를 지은 사람이든, 어떤 수치를 당하였든 변하지 않는, 수지와 나의 관계는 이 세상, 사회라는 사람들이 만든 탈출 불가능한 공간에 소속되지 않는 순결한 사랑이다. 

 오늘 저녁 수지에게 귀한 청국장가루로 볼모양 쿠키를 만들어 먹였다. 미쳤다는 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일이지만, 통통하고 커다란 앞발로 동그란 쿠키를 굴려가며 입안에 넣어봤다 다시 뱉었다, 살며시 물고 집안에 들여놨다, 크게 앙 물지도 못하고 앞니로 살금 살금 쿠키를 쪼개어 먹는 그 모습에, 하룻동안 수지와 대화할 수 있다면 영혼을 팔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살아 있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것이라는 것을, 수지를 보며 배운다.

 내가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인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를 주어서가 아닌, 내가 존재하는 자체로 그러할 수 있다는 가르침에 수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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