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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Mar 28. 2018

봄의 맛

 불과 지난주까지 입던 겨울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보기에도 무거운 오리털 파카며 솜이 두둑한 털 달린 점퍼까지. 칠평짜리 작은 방 의자 위며 방문에 걸어둔 옷걸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이, 오늘따라 눈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 옷이 없었으면 뭘 입고 다녔을까 고맙기 그지없었는데, 불과 일주일 사이에 날씨는 겨울에서 여름으로 두 계단을 껑충 뛰어넘어 버렸다. 노곤노곤 온 몸이 풀어지는 따뜻한 공기며, 꽃샘추위도 올 새 없이 수온계가 10도에 육박하는 여름이 와버린 것이다. 이렇듯 비엔나의 계절, 특히 봄에 아쉬움이 많다. 


 내가 봄을 이토록 아쉬워하는 까닭에는 내 생일이 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길고 추운 겨울을 아는 모든 이에게 봄이란 반갑고 다정한 존재일터이지만, 나에게 봄은 눈 많이 오는 아주 추운 겨울날 얼음을 베어무는 것처럼 짜릿하고, 아주 더운 여름 오후 두시 그늘 없는 운동장 아래 서있는 것처럼 뇌리에 강렬한 봄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남들보다 키는 한 학년을 넘게 컸지만 몸은 튼튼하지 못했던 나에게 겨울은 아픔의 계절이었다. 내적 성숙, 성장의 통증 이런 것보다, 그냥 나는 일 년 내내 겨울엔 특히 심한 열감기를 앓았다. 

 나의 유년의 기억에는 봄쑥 뜯기, 여름 자두 따먹기, 가을 메뚜기잡이 등 다른 계절의 추억은 다 있어도, 겨울 바깥 놀이에 대한 추억은 없다. 가장 선명한 겨울의 기억은, 우리 지역에서 제일 큰 병원이었던 순천향병원 가는 길과 그 병원에서 편도선 수술을 하고 입가와 수술담요에 피를 묻힌 채 실려 나오는 아이들의 잔상이 지배적이다.

 독한 감기는 꽃샘추위 산발하는 봄까지 이어졌는데, 내가 봄이 왔음을 똑똑하게 알 수 있었던 건 바로 돌아오는 내 생일 상에 오르던 딸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일 년 내내 하우스 딸기를 먹을 수 있지만, 얼마 나이 먹지 않은 나에게도 겨울과일은 희귀한 것이었다. 우리 집도, 앞집도, 아랫 집에도 겨우 내 먹는 과일이란 으레 감귤밖에 없었다. 개나리가 펴도 추워했던 내가 봄이 왔구나 를 알게 했던 것이 바로 딸기였던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딸기의 달콤하고 싱싱한 냄새는 봄의 냄새, 온 봄을 상징할 수 있는 바로 그 냄새이다. 겨울이 무채색이라면 딸기의 강렬한 붉은 색만큼 봄의 존재감을 들어낼 수 있는 색이 있을까.


 지금만큼 단 것이 지천에 있지 않던 시절, 설탕보다 더 달고 사이다보다 더 청량하던 그 딸기의 생생한 생동의 맛을 잊을 수 가 없다. 사랑표현에 어색했던 아버지는 4월, 딸의 생일이면 퇴근 길에 하얀 스티로폼 박스채로 딸기 사왔었다. 양 손에 딸기 박스를 들고 오는 아버지를 우리 삼남매는 박수를 치며 현관까지 마중했었다. 아, 그때 어린 자식들을 보던 아버지의 표정이란!

 이십년이 흘러, 지금의 나는 봄을 기다리지 않아도 딸기를 먹을 수 있는 시절에 살고 있다. 

 4월, 아버지에게서 딸기를 받아먹던 어린 딸은 이역만리 외진 땅에 살고 있고, 삼남매가 북적거리던 고향집에는 부모님 두 분만 살고 계신다. 이제 딸은 봄까지 딸기를 기다리지 않고, 아버지는 4월이 되어도 딸기를 박스 채로 사지 않으신다. 

 겨울옷은 몇 가지 넣지 않아도 박스가 가득 찬다.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겨울 옷을 정리하고 있는 건, 놓쳐버린 듯한 계절 때문인지, 아니면 잊지 못할 향수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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