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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Mar 29. 2018

우울한 사람이 엄마가 된다는 것

 자녀를 갖는다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1980년대 출생자로서 삼포세대의 현실적 문제 때문이라기보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남들이 눈에는 성실하게 살아온 삶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나의 활동성과 노력 안에는 언제나 조급함과 불안함이 내재되어 있었다. 내 삶이 어디로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나를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인생에서 가장 왕성한 에너지를 보여줄 이십대 초반의 매 한 해, 한 해를, 그래서 나는 남부럽지 않게 채워나갔다. 일 년 중 가족과 지내는 날이 한 달이 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바빴고, 열성적이었고, 쉬지 않았다.   

스물의 중반이 지나갈 때쯤이었을까, 잠깐 잠깐 비는 그 시간의 균열 속으로 우울이 찾아온 것은.  


 스물 여섯 살의 나는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가끔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보이는 나즉나즉한 시골집들을 보면 귀농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불안과 초조함이라는 부정적인 에너지였더라도, 그 에너지는 내 삶의 불꽃 같은 것이었다. 

허무함이 이산화탄소처럼 불꽃을 잠식하기 시작한 자리에는 그을음이 지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가졌던 여러 잡념들 중에 가장 확실하게 다짐 했던 것이 바로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내 한 몸 조차 끌고 가지 못할 삶에 누군가를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고, 그 대상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소망이 없었던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설적이지만, 슬픔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은 행복을 바라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같은 의미로, 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좋고 예쁜 것만 주고 슬프고 나쁜 것은 피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 ‘모성’이라는 것의 하나의 표현이라면, 무자녀에 대한 소망은 나의 모성에서 비롯된 것이 맞을 것이다. 

스물 중반의 우울 속에서, 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들처럼, 나의 우울도 치유된 듯 치유되지 않은 듯 삶 속에서 무뎌져 갔다. 

 거실 중앙에 놓인 버리고 싶은 오래된 가구처럼, 그 불편한 감정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달까. 


거실 중앙에 놓인 버리고 싶은 가구처럼, 우울은 내 삶 속에 익숙한 듯 무뎌져 갔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우울해 한다. 딸로서, 친구로서, 배우자로서 나의 모습보다 엄마로서의 모습에 더욱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거실에 놓은 불편한 고가구가 눈에 띌 때마다, 행복만을 줄 수 없는 엄마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마음 속 거실 뿐 아니라, 실제 나의 거실에도 눈에 예쁘지 않은 물건들이 채워지고 있다. 모두 아기와 관련된 가구와 용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커다란 3단 서랍장은 모든 각도에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위치와 부피감을 뽐낸다. 책상 옆에 바로 놓인 장의 서랍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본다. 그 육중하고 불편한 가구의 서랍을 자꾸자꾸 열어보고 싶은 마음은 무엇일까.  


내 마음 짐을 치우기 전에, 나는 오롯이 건강한 마음을 가진 엄마와 같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전체와 부분의 문제이지 않을까. 

행복만을 주지는 못할 지라도, 내가 가진 복잡함 속에 행복이 전달된다면. 

눈에 불편한 거실 서랍장 속에서 어떤 듣도보도 못한 감정이 자꾸만 보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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