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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Mar 29. 2018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개파라치의 차이점

 모두가 기억하고 있듯, 작년 5월 대선 때만 해도 반려동물 제도 개선은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었다. 본인의 반려견 사진을 SNS 에 올리고,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가고, 유기동물을 입양하기까지 했다. 그때만 해도 이제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반려문화정책이, 제도가 만들어지겠구나 라는 기대를 품었었다.  

 하지만 작년 연말부터 반려견과 관련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 유기동물 보호 지원 등이 아닌, ‘위험한 반려견’ 이라는 테마였다. 반려동물의 관리 소홀로 인해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끼친 것은 명백히 반려인의 잘못이다. 특히 반려인의 그릇된 애정으로 잘못 키워진 반려견에게 책임에 대한 면죄부를 줄 생각도 없다. 하지만, 반려견 사고에 대해 ‘위험한 반려견’ ‘나쁜 반려견’ 이라는 내용으로 일률편파적으로 보도되는 기사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게 된다. 반려견 사고가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일까? 


 미디어의 생리 상, 한 번 관심을 끌은 테마는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적으로 노출된다. 최근 지속적으로 기사화되고 있는 반려견 사고 문제 역시 비슷한 현상이라 생각된다. 반려견 사고는 최근 갑자기 발생하게 된 문제가 아니며, 부족한 반려견 상식과 문화 아래 증가하는 반려견 수와 비례하여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 분노의 대상은 사고를 일으킨 반려견을 향하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 잘못이 반려견에게만 있는 것 일까?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키우는 반려동물, 사람과의 공감이 가장 높은 동물. 반려동물 로서 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긍정적인 면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려견을 입양하는데 있어 제약도 없고, 자격도 묻지 않는다. 닭, 소, 돼지와 같은 가축을 사육하기 위해서는 허가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이 쉬운 과정을 통해 입양된 반려견들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게 될까. 살아있는 유기체에게 필요한 적정한 공간 독립된 자유, 적절한 급식, 적절한 활동과 의료조치 이라는 최소한의 조건들을, 과연 보장받고 있을까? 

 동물원에 사육되는 동물들은 위 네 가지 조건 중 적어도 2~3가지를 보장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대’ 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조건을 내 집에서, 이웃집에서 길러지고 있는 반려견에게 적용해보자. 당신과 이웃의 반려견은 학대받고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기사에서 반려견 사고를 접할 때마다, 강아지 엄마로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피해자, 그리고 반려인으로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내가 접한 다수는 오히려 해당 반려인에 대한 분노와 가해견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하는 사건들이었다. 열 살에 가까운 반려견이 자신의 반려인을 공격하고 탈출한 일은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라 보기 어렵다. 먹을 것을 구할 때와 본인과 가족을 방어하기 위할 때를 제외하고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정상적인 개의 행동의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에서 탈출해 지나가던 행인과 다른 반려견들을 무작위로 공격했던 셰퍼드들은, 무려 7마리가 한 우리에서 키워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회에서 반려동물은 인간의 소유물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반려인 자체가 반려견, ‘개’ 에게 필요한 자원들을 제공하지 않는 것 역시 학대에 속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원인에는 학대견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양산한 나를 포함한 반려인과 기관들의 역시 책임이 있다. 방송, 블로그와 같은 각종 매체에서 노출되는 ‘학대견’ 의 이미지는 신음하는 병든 반려견들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개체의 종과 크기에 관계없이 학대견들은 겁에 질려있고 인간을 무서워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친화적이며 온순하다. 두려움을 느끼는 반려견들이 보이는 행동 양상을 굴복, 회피와 같은 ‘소극적 대응’ 으로만 비추는 지금의 홍보들이 학대견에 대한 폐쇄적이고 고정적인 이미지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실제 반려견들의 공격성향은 두려움을 느꼈을 때 표출되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공격적 개=나쁜 개’, ‘학대받는 개=불쌍한 개’ 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한국에서 학대견에 대한 개념은 그 폭이 매우 좁아져 있다. 그 속에서 공격적인 반려견 역시 학대의 결과물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은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반려견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도조차 없이, 반려견 사고 대응으로서 나온 제도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졸속 조치로 비난을 샀던 입마개 의무화와 목줄 길이 제한은 철회되고, 위반사례 신고 포상제도는 시행을 하루 앞두고 유보되기는 했지만,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이 반려견의 상황과 습성을 고려한 근원적인 문제 해결에서 동떨어진 조치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감스럽다. 몇 몇 조례들은 반려견의 습성을 무시하는 신체, 행동제약으로 스트레스와 불안지수를 높이게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현재 유보되어 있는 개파라치 제도 역시, 과연 반려견 문제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 사실 개파라치라고 불리는 제도와 비슷한 사례는 오스트리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의 개파라치는 한국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반려견을 학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 오랫동안 산책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거나 반려견의 심리적, 육체적 상태가 건강해 보이지 않을 때, 즉 적절한 양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 경찰 또는 동물복지 관청으로 신고 할 수 있다. 때리고 굶기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라, 생명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 역시 학대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반려견 사고 문제에 나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기본적 전제에서 반려견의 권리란 밀려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를 일으키는 주체가 반려견이라는 사실 때문에 모든 강아지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기 보다, 문제 반려견의 생활배경, 나아가 해당 반려인에게 책임을 묻는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본다. 반려견의 사고 문제는 다만 비반려인들에게 민감함 사항만은 아니다. 사고의 피해자는 사람은 물론, 다른 반려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려견 가족 모두에게도 대단히 우려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유보된 개파라치 시행을 기점으로, 반려견의 입장에서 근원적인 문제를 차단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 고안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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