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살찐 손가락을 의심했던 순간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띠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띠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리리리 리리리리 띠리리리 리리리리."
도어록이 나를 거부했다. 비밀 번호를 3번 틀리자 도어록은 요란하게 울었다. 내 얼굴은 5초 만에 땀으로 범벅됐다. 현재 시간은 아침 7시 10분. 아직 꿀잠 자는 옆 집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민폐를 제공하는 꼴이 되었다. 조용한 오피스텔 복도는 듣기 싫은 소음으로 가득 찼고 그 소리는 몇 배 증폭되어 내게 들렸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최근에도 3번 거부했던 도어록이다. 한 번은 오늘 아침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 어쩔 줄 모르고 문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데, 때마침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청소 아주머니는 멍하니 서있는 나와 문을 번갈아 보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스캔했다. 매일 한 두 번은 꼭 마주치는 아주머니였는데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충분히 기억할 만도 한데. 아니면 도둑으로 보는 걸까. 아주머니의 눈빛이 원망스러웠다.
벨은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1분 동안 목청껏 울었다. 소리를 최대한 줄여보려 도어록에 최대한 몸을 밀착해 보기도 하고, 양손으로 도어록 위아래 부분을 가려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장마 기간이라 습해서 도어록도 영향을 받는 걸까, 이참에 지문 인식 도어록으로 바꿀까? 일단 여기서 도망칠까? 머릿속은 여러 생각들로 가득 찼다.
"띠리리리 리리리리 띠리리리 리리리리."
또 틀렸다. 잠시 조용했던 오피스텔 복도는 다시 한번 1분 동안 시끄러워졌다. 나 때문에. 갑자기 417호의 문이 벌컥 열렸다. 이런 걸 두고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는 건가? 맞은편 417호에서 젊은 아들이 문을 열고 나오며 헛기침을 한다. 미안했다. 눈도 못 마주치고 인사도 못하고 가만히만 서 있는데 젊은 아들의 눈빛이 옆통수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안 되겠다 싶어 입술을 열고 죄....... 송이라고 말하려 고개를 드는데 젊은 아들은 벌써 현관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쾅~"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10배는 크게 들렸다. 내 마음도 철렁 내려앉는다. 또다시 찾아온 정적. 피하고 싶은 1분이 또 끝났다. 1분이 이렇게나 긴 시간임을 오늘만 두 번 경험했다. 쪼그려 앉았다. 도어록 앞에. 이번에는 정말 실패하지 말아야지 하는 일종의 각오였다. 도어록과 같은 눈높이로 도어록을 바라봤다.
여름 장마 때문인지, 더위에 몸이 피곤해서 인지 몰라도 최근 아침마다 손이 붓는 느낌이었다. 일어나서 붓기가 가라앉길 바라며 찬물로 손을 씻고 이리저리 손을 마사지하고 스트레칭도 했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후 3시가 지나서야 붓기는 가라앉았다.
쪼그려 앉아 키패드를 보니 얼룩 같은 게 묻어 있는 게 보였다. 정확히 * (별표) 자리에. 음식물 잔해 같기고 했고 지문 같기도 했다. 혹시 이것 때문에 계속 안됐던 것일까? 이물질 부근에 침을 살짝 바르고 티셔츠 왼편 끝단을 잡아당겨 이물질을 닦았다. 키패드가 좋아했다.
앞에 두 번은 서서 엄지 손가락으로 비밀 번호를 눌렀는데 이번엔 검지 손가락으로 누렀다. 천천히 조심스레 정성을 담아서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다 누르고 마지막 별표까지 눌렀다.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리리리~."
열렸다. 드디어. 문 열리는 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내 집에 들어오는 이 느낌이 이렇게나 반갑고 기쁘고 좋을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한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새롭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지금은 종영된 <개그 콘서트>에서 유독 공감했던 코너는 아빠와 아들이었다. 살찐 아빠와 살찐 아들이 겪는 소재로 만든 코너는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아빠와 아들을 보면서 내게도 일어났던 일을 내가 많이 놓치며 살았구나를 발견했다. 종영되지 않았다면 <개그 콘서트>에 에피소드를 보내보고 싶다.
'수영아, 무슨 일이니, 왜 집에 안 들어가고 그렇게 서 있어?'
'문이 저를 거부해요.'
'비밀 번호 제대로 눌렀니?'
'네, 제대로 3번 눌렀는데 이상해요. 손가락이 살쪄서 그런가 봐요.'
'아니야 수영아. 이제부턴 카드키로 열자꾸나.'
'뚜비 뚜바 뚜 뚜바 뚜비 뚜바 뚜 뚜바. 아빠와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