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호의 속사정 (2)

베일에 가려졌던 층간 소음의 정체

by 오류 정석헌

"쾅, 쿵, 쾅, 쿵, 쾅."


새벽 2시에, 군대 시절 두 번 던져봤던 수류탄 투척 후 진동 같은 것이 느껴져 벌떡 잠에서 깼다. 들렸던 소리로 예상하건대 아파트 주변에 대형 사고가 일어난 것임이 틀림없었다. 쿵쿵 소리는 멀지 않은 거리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다음 날 밤 11시쯤 같은 소리가 또 들렸다. 어제 듣던 그 소리였다. 쿵쿵 소리는 비주기적으로 계속 발생했다. 하루 건너 혹은 3일에 한 번, 5일에 한 번. 일종의 행사처럼. 소리의 정체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문을 쾅 닫을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했고, 누가 술에 취해 제 집 문을 세게 차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야, 어떤 새끼야~."


웬만해선 밤 9시 이후 깨는 일이 없는 아빠가 큰 소리를 지르며 현관문으로 달려 나갔다. 현관문을 어찌나 세게 열었는지 현관문이 벽에 부딪히며 쾅 소리를 냈고 계단에선 도망치는 발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잠옷 바람으로 관리 사무소로 향했다. 난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일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다음 날 아침, 엄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유리그릇 깨지는 소리가 온 집안을 강타했다. 엄마가 요리하시다 그릇을 깬 것일까. 난 내 방에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식탁으로 향했는데 거기엔 엄마는 없었다. 엄마방의 문을 열고서야 엄마방 베란다 창문이 깨져 있음을 확인했다. 두꺼운 창문이 X자로 금이 가 있었고 창문 아래쪽엔 개 한 마리가 들락날락할 정도로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경찰에 신고해라."


아빠의 말에 엄마는 묵묵부답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엄마는 방에서 벗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아빠가 대신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곧 우리 집에 당도했다. 추석 연휴 첫날의 일이었다. 아침 식사도 하기 전에 일어난 일은 하루 시작을 망쳤고 연휴 기분도 망쳤다. 경찰은 사진으로 이것저것 찍고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과 답이 오가면서 간밤에 울리던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했다.


"밑에 집 청년이 그러는 것 같습니다. 계속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면서 혼자 있을 때 시도 때도 없이 집에 벨을 누르고 문을 발로 차기도 하고 급기야 유리창까지 깬 것 같아예."


엄마의 진술에는 어디다 속 시원히 말 못 하고 그간 혼자 삭여야 했던 두려움과 공포가 녹아 있었다. 경찰은 상황 파악을 위해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2002호 범인은 집에 없었다. 친척들만 집에 있던 상태였다. 난 부모님 집 현관에 나와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몰래 엿들었다.


"저, 미친놈 저거. 또 지랄인갑네."


복도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지 19층 아주머니가 집에서 나와 20층에 대고 소리쳤다. 정신 병자, 미친놈, 못 살겠다, 이사 가야겠다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소리는 점점 많아졌다. 급기야 3명의 아주머니가 2002호 복도 앞에 모였고 순식간에 작은 반상회가 열렸다. 관리 사무소 직원도 어찌 알고 왔는지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의 현장 방문에서 도구로 의심되는 하키 채가 발견됐다. 하키 채는 엄마 방 바로 아래 방에 위치해 있었고 유리 조각 곳곳에 박혀 있는 상태였다.


범인은 현장에 없고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이 상황을 당한 범인의 친척 누나들 속수무책이었다. 누나들은 피해 보상과 재발 금지를 경찰과 반상회 아주머니들 앞에서 약속해야만 했다. '신신당부'라는 단어가 계속 들렸고 다음으로 '다시는'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경찰 방문은 효과가 있었다. 그 뒤 일주일간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연휴가 끝나면서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쾅, 쿵, 쾅, 쿵, 쾅."

"띠리 리리~띠리 리리."


출근 준비를 하는데 현관 문이 부서질 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급기야 벨도 울렸다. 현관 벨 모니터를 지켜보던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절대로 문 열어주지 말라며 나를 막아섰다. 아빠는 새벽 운동을 나간 상태였고 엄마와 나만 집에 남겨진 채 쿵쿵 소리와 벨소리를 연달아 들어야 했다.


"내가 이사를 가던지 해야지 원. 이게 무슨 일이고. 하이고."


식탁에 힘없이 앉은 엄마는 한탄 섞인 원망을 쏟아냈다. 엄마의 오른쪽 눈가에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연휴 동안 잠시 조용했던 평화가 사라지고 다시금 전쟁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속에서 열불이 솟았다. 그간 잠잠했던 욕이 순간 목구멍 앞까지 당도했다. 엄마의 눈물을 보는 순간 몸은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갔다.


"서커나... 안돼."


문을 벌컥 열려던 손이 멈칫했다. 막무가내로 사고 치고 다녔던 학생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대로 문을 열었다간 사고는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문고리를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박고 볼 참이었고 상대가 누구든 사정 따윈 봐줄 생각이 없었으며,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며 끝장을 볼 요량으로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는 찰나. 소리가 멈췄다. 이후로도 영원히.


한 달 뒤, 일요일 아침. 이사집 센터 차가 사다리를 올리는 소리가 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랫집이었으면 했는데 정말 아랫집이었다. 이삿짐센터가 이리도 반갑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참 뒤 엄마는 이런 얘길 들려주셨다. 아랫집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막내아들이 외지에서 간병을 하러 왔는데 병간호하면서 그 스트레스가 신경과민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이사 가기 전에 집에 찾아와서 그간 죄송했다며 인사하더라고. 그리고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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