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호의 속사정 (1)

절묘한 타이밍에 발생한 사건

by 오류 정석헌

현관문 도어록 손잡이가 찢겨 있었다. 망치에게 얻어맞은 것 같기도 했고 돌에 맞은 것 같기도 했다. 디지털 키패드 액정도 깨져 있었다. 어제까진 멀쩡했던 것들이다. 하루 만에, 부모님이 여행 간 잠깐의 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퇴근하고 쏜살같이 달려와 마주한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고 덩달아 손도 덜덜 떨리게 했다. 현관 앞에 가만히 서있다가 도둑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눈으로는 현관문을 예의 주시하고 손은 21층 엘리베이터 하강 버튼을 더듬었다. 만약 이 상황에 현관문이 열리고 범인과 마주친다면 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게 뻔했다. 제압할 무기는 맨 몸이 다였고 방어할 수 있는 건 가방 하나뿐이었으니까. 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당겨 메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긴장의 끈도 당겼다. 아침에 다려 입고 나간 셔츠는 1시간 운동한 것처럼 땀으로 베었다. 엘리베이터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1층에서 막 2층을 오르는 중이었다. 버튼을 반복적으로 누르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30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에서 벗어나 겨우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고 1층으로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제야 호흡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휴대폰을 꺼내 112부터 눌렀다.


“뚜~~ 뚜~~112 콜센터…”

“저희 집에 도… 도둑이 든 것 같아요. 현관문이… 부서지고. 빨리 좀 와주세요. 우장산…”


앞으로 3일간 나 홀로 집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펼쳐진 일이었다.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린 시간이 2박 3일처럼 느껴졌다. 10여분 쯤 흘렀을까, 경찰차가 눈에 들어왔고 10년 만에 만난 친구를 만날 때처럼 양손을 흔들며 경찰차를 향해 돌진했다.


경찰 2명과 함께 21층에 도착했다. 우린 셋이었고 상대는 몇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셋 중 덩치가 제일 큰 건 나였다.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니 문이 그냥 열렸다. 문에 들어서기 전 경찰은 허리 뒷 춤에서 뭔가를 쓱 꺼냈다. 영화에서만 보던 검은색 봉 그것이었다. 오른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데 봉이 ‘착’하고 늘어났다. 경찰을 향한 내 믿음도 함께 늘어났다.


“키이 이익…”


문이 조용히 열렸으면 좋았으련만 문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덕분에 현장을 덮칠 기회가 사라졌다. 경찰 2명이 앞에 서고 난 뒤를 맡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현관 입구에 비치된 우산을 하나 꺼내 들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우린 발소리를 맞춰 걸었다. 소리를 최대한 죽이면서 한 걸음씩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집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온 신경이 귀에 집중됐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관을 통과하자 익숙한 내 방과 동생 방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물체도 보이지 않았다. 오른편으로 몸을 돌려 거실로 들어섰다. 역시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부모님 방뿐. 우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경찰은 좌로 우로 연신 고개를 돌리며 사방 경계 자세로 부모님 방 앞에 도달했고 마침내 집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숙였던 허리를 펴며 왼편 경찰이 말했다.

“혹시 없어진 것들 있는지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난 경찰에 말에 부모님 방, 내방, 거실, 주방을 빠르게 훑었다. 없었다. 없어진 것이 아무것도. 내 기억으로 모든 물건은 전부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거실의 찍힌 범인의 발자국이 보였다.


“저기, 저거요.”

“네?”

“아~.”


범인의 발자국이 아니라 경찰의 발자국이었다. 신발을 벗을 틈 없이 집안으로 들어온 탓이었다. 그제야 신발을 신고 온 집안을 누볐음을 깨달았다.


“일단 저희는 돌아갈게요.”

“저…만 두고 가시는 건가요? 혹시 또 모르는…”

“일단, 열쇠부터 수리하셔야겠어요. 여기 열쇠집 전화번호요. 010-77xx-xxxx.”

“그럼, 저희는 이만…”


나를 지켜주던 경찰 2명이 나만 달랑 남겨졌다. 문이 고장 난 상태니 만약 경찰이 돌아간 뒤 누군가 들이닥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단 거실에서 아이언 골프채 하나를 챙기는 것으로 무장을 마쳤다. 조용한 거실에 앉아서 한숨 돌렸다. 오늘 상황은 부모님이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말씀드리기로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파트 1층 출입구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만 출입이 가능한데 범인은 어떻게 출입을 했을까, 또 집주인이 출타 중인 날짜를 어찌 알고 기가 막히게 이런 일을 벌였을까, 문이 저렇게 부서지는 동안 분명 큰 소리가 났을 텐데 이웃집 사람들은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관리 사무소엔 혹시 신고가 접수되었을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출입구에서 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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