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임시 저장 기능이 없었다면
브런치에 1시간 동안 타이핑한 글이 사라졌다. 무엇에 홀린 듯 발행 버튼 대신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브런치 커버 이미지 사진을 넣으려다 다른 사진이 선택된 걸 발견하고 얼른 다른 사진으로 바꾸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커버 이미지 버튼을 눌러야 했는데 손이 제멋대로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버렸다.
왜 그랬을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손을 원망한들 되돌리기는 불가능했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으니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순간 멘붕이 찾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빈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여기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내 실수로 일어난 일인 것을.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른 구글 크롬 화면에는 무언가를 입력을 바라는 구글 창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의욕 상실과 더불어 몸도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한숨을 서너 번 쉬던 그때 눈이 구글 크롬 왼쪽 상단에 버튼에 머물렀다. 그곳엔 3개 버튼에 버튼이 있었다. 3개 버튼은 뒤로 가기, 앞으로 가기 그리고 실행 취소 버튼이었다. 9회 말 2 아웃에 위기 상황에 등판한 구원 투수를 발견한 듯 기뻤다. 뒤로 가기 버튼 옆에는 앞으로 가기 버튼과 실행 취소라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는 걸 여태 잊고 있었다. 혹시 내가 앞으로 가기 버튼을 누른다면 사라졌던 글이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실망이 순간 기대로 바뀌었다. 나는 맥북 키패드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올리고 어떤 기대를 담아 앞으로 가기 버튼을 클릭했다. 기척처럼 사라졌던 글이 다시 부활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앞으로 가기를 누른 결과는 역시나였다. 바뀐 건 구글 페이지에서 달랑 제목만 입력된 브런치 페이지가 전부였다. 본문은 역시나 비어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실행 취소 버튼 하나다. 맞아, 실행 취소는 아까 했던 걸 되돌리는 거니까 지금 실행 취소를 누른다면 브런치 글이 살아날 거야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기대를 담아, 사라진 내 글이 되살아나는 기적을 바라며 정성스럽게 실행 취소 버튼을 눌렀다. 실행 취소 버튼만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시계방향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둥글게 말아진 화살표 하나에 내 1시간의 노력의 결과가 고스란히 달려있었다.
"딸깍."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역시나 돌아온 건 실망뿐이었다.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행 취소를 누르니 바라던 브런치 글은 살아나지 대신 않고 앞전 구글 화면으로 돌아갔다. '아아~ 신이시여, 어찌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더 이상 나는 모니터를 볼 수 없어 맥북을 닫아 버렸다.
앞으로 선택지는 두 가지다. 바둑 기사가 시합에서 졌을 때 바둑돌을 복귀하듯 쓴 글을 복귀해 다시 쓰거나 아니면 말거나다. 난 후자를 택했다. 다시 쓸 생각이, 마음이, 체력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사라진 것에만 초점이 맞춰기에 다시 쓸 생각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잠시 다시 쓸까를 고민했지만 막막했고 순간의 실수를 저지른 나에게 자괴감이 들어 지금은 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일 쓰자며 창을 닫았다. 오늘 하루쯤은 글을 건너뛰어도 큰 일 따윈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이번 일로 계속 못쓰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생겼다. 두 마음이 내 안에서 다툼을 시작했다. 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아질까 해서 오피스텔 밖으로 나갔다. 날씨는 이런 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했고 태양은 활짝 웃고 있었다.
집 주변을 느릿느릿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바삐 움직이는 차들을 둘러보니 좀 전에 당황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30분쯤 산책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다시 써보자는 마음이 이겼는지 맥북을 다시 열었다.
기존 창은 전부 닫고 새로운 크롬 창을 열었다. 새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 탭을 누른 뒤 브런치 주소를 입력하고 글쓰기 버튼을 꾹 눌렀다. 다시 써보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그러던 그때, 브런치에서 메지가 하나 크게 떴다. 메시지를 보는 눈이 점점 커졌다. 메시지는 바로 '임시저장 글을 불러오시겠습니다?'였다. 1시간 전 저장한 글이 있다며 임시 저장 글을 불러오겠냐는 친절한 물음. 어머나, 브런치는 이런 상황을 어찌 알고 이런 기발한 저장 시스템을 마련해둔 것일까. 브런치 개발자에게 존경의 마음이 샘솟는 순간이었다.
임시 저장 버튼 하나에 울고 웃었다. 만약 임시 저장 기능이 없었다면 나를 포함해 많은 작가들이 쓰기를 포기했을지 모른다. 분노와 행복을 동시에 경험했다. 디지털은 쓰기 편한 만큼 사라지는 것도 쉽다. 여태 당연하게만 여겼던 저장 버튼의 중요함을, 임시 저장 기능 덕분에 마음의 변덕스러움을 경험한 하루였다. 앞으로는 쓰는 것만큼이나 저장에도 좀 더 주의를 기울이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