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고양이를 학대하는 거야.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by 오류 정석헌

“아~우, 아~호, 아~우~.”


10개월 전 412호로 이사 온 첫날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한참 방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선명한 목소리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복도에서 나는 것 같다가 밖에서 들리는 같다가 정확히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짐 정리를 다 마치고 잠을 청하려는데 아까 그 소리가 또 들렸다. 소리라기보단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어디가 아픈가 아니면 배가 고픈가. 여태 고양이 소리는 '야옹' 하나만 알고 있던 내겐 난생처음 들어보는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피곤해 빨리 자고 싶었는데 고양이 울음소리에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소리는 작았다 커졌다를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결국 3M 이어 플러그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에도 그 소리는 계속됐다. 오전 10시경에도, 오후 3시에도, 새벽 1시에도 들렸다. 만약 이 상태라면 아니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난 매일 밤 이어 플러그 없이는 잠을 못 자는 게 당연했다.


소리를 가만히 주의 깊게 들어보니 거기엔 아픔이 녹아있다. 배고파서 우는 소리는 아니었다. 배고프다고 목놓아 우는 고양이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고양이 학대를 의심했다. 학대를 당한 고양이가 아파서 우는 소리라 생각했다.


어느 날은 고양이 소리를 듣자마자 복도로 나갔다. 몇 호에서 나는 소리인지 확인해 신고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복도로 나가면 소리는 멈췄다. 몇 번 나가봤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불만은 그렇게 계속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처음엔 옆집을 의심했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우편함을 확인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413호의 우편함은 항상 가득 차 있었다. 관리비 고지서, 통신사 요금 납부 안내서, 구독 잡지 등으로 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편함을 보며 옆집 사람이 점점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우편함을 볼 여유조차 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일까, 남자 일까 여자 일까 점점 궁금증이 혼자 커져갔다.


“아~우, 아~호, 아~우~.”


주기적으로 옆에서 들렸다가 멀리서 들렸다가 하는 소리에 의심은 4층의 모든 방으로 확대됐다. 관리 사무소에 이걸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만히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운 날은 밖으로 나가 걸었다. 해결되지 않은 의심은 점점 증폭됐고 이상한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혼자 사는 사람이 퇴근하고 돌아와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고양이에게 푸는 건 아닐까 하는 종류의 의심이었다.


서울에 올 겨울 첫눈이 내리던 날에도 고양이는 울었다. 이 날의 울음은 더 날카롭고 애처롭게 들렸다. 눈 맞으며 걷기 싫었지만 방에 앉아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기보단 눈을 맞고 걷는 쪽을 택했다.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그 순간 복도에서 413호 문이 열렸다. 413호는 커다란 고양이 캐리어를 들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가고 있었고 난 그 뒤를 따랐다.


“아~우, 아~호, 아~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바로 그때, 여태 나를 괴롭히던 바로 그 소리를 마주했다. 고양이 울음소리는 어찌나 컸던지 평소보다 10배 크게 들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표정은 다급하게 일그러졌다. 욕이 순식간에 목구멍 앞까지 당도했다. 입을 열어 한 마디 꺼내려는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413호는 옆에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거리는 나를 곁눈질로 보더니 다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범인은 413호였다. 첫 번째 의심이 맞았다. 눈을 맞으며 걸으니 차츰 화도 눈처럼 내려앉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인천에 사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사 온 첫날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폭풍처럼 쏟아내는데 인천 형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야, 그건 학대가 아니라 고양이가 지금 많이 아픈 거라고. 그래서 그렇게 애타게 울었다고."




첫눈이 오고 며칠 뒤, 플라스틱 검정 상자가 눈에 띄었다. 이삿짐을 담을 때 쓰는 커다란 박스 5개가 몸을 활짝 펼친 채 413호와 412호 사이에 기대고 있었다. ‘413호 이사 가는 건가.’ 펼쳐진 검정 상자는 몇 날 며칠을 복도에서 지냈다. 방 안으로 들어갈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요 며칠 밤에 잠을 잘 잤다. 뒤척임 하나 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아침 공기를 쐐러 옷을 입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검은 박스와 캣타워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413호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 2명이 짐을 나르는 중이었다.


413호와 남자 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413호는 캣타워에 달려있는 장난감을 무심히 툭 떼서 박스에 집어넣었다.


"이제 좀 홀가분해,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했잖아."


친구로 보이는 남자의 말에 413호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렸는데 이번에도 413호는 타지 않았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힐 때쯤 413호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413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미안했다는 인사 같았다.


내가 모르는 삶이 도처에 널려 있다.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적다 느낄 때는 그런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데 1층 쓰레기 통 옆에는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본 캣타워가 보였다. 우편함도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고양이도 떠나고 413호도 떠났다. 잠시 마나 나의 불편으로 잘 알지도 못하며 타인의 삶을 의심했던 나를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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