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생활자의 오류 (1)
"정대리, 지난주 만난 사람 어땠어?"
매주 맞선을 본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김 과장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월요일 아침, 회사 18층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김 과장의 물음이 좋기도 했고 한편으론 싫기도 했다. 난 답을 피하지는 않았다. 김 과장은 자신도 맞선을 통해 결혼했고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며 기회가 되는 한 많이 만나보고 결정하라는 이야기로 매번 끝을 냈다.
남자 나이 서른 중반, 맞선 시장에선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시기다.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에 입사한 지 어느덧 8년 차, 회사마다 직급은 다르겠지만 현재 회사에서 내 직급은 대리였다. 벌이는 어느 정도 했지만 연애는 시작도 못한 큰아들에게 엄마는 어느 날부터 맞선을 제안했다. 주말에 방구석에만 틀어 박혀 있는 모습이 꼴 보기 싫으셨을까. 당시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잔소리를 듣느니 맞선이라고 보자는 심정으로 한 번 두 번 자리에 나갔다.
소개팅과 맞선은 다르다. 소개팅은 자연스럽게 만남이 연애로 발전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맞선은 결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맞선을 본 뒤 3번 정도 만남을 이어나가면 양쪽 집안에선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
"성남에서 공무원 한다더라. 마음씨가 착하데. 한 번 만나봐."
엄마에게 전화번호를 받았지만 '성남'이란 단어에서 거부감이 들었다. 집에서 멀었기 때문이었다. 차로 가도 최소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였기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전화번호를 받았으니 계속 미루기만은 할 수 없었다. 1달을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 마침내 전활 걸어 약속을 잡았다.
하필 약속을 잡은 날 비가 억수로 내렸다. 칼퇴근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 도로로 나갔는 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한숨부터 나왔다. 약속을 다음으로 미룰까 했지만 한 달을 미뤘기에 결국 그대로 성남으로 향했다.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첫 만남부터 늦는다면 상대에게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기에 요리조리 차들을 피해 곡예 운전을 시전 했지만 결국 약속에 늦고 말았다. 약속 시간을 30분 남겨 놓고 맞선녀에게 전활 걸었다. 차가 많이 막혀 3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쿨하게 그녀는 괜찮다며 회사에서 기다리겠다 했다.
내가 정한 약속 시간보다 20분 늦게 장소에 도착했다. 그녀는 1층에 내려와 있었다. 우산도 안 쓴 한 여성이 내 차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비상 깜빡이를 켠 흰색 차량이라는 설명에 그녀는 앞 뒤 안 가리로 내 차로 뛰어왔다.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 같았다.
옆 자리에 오른 그녀에게서 향기가 났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젖은 단발머리, 동그랗고 큰 눈 그리고 어색한 미소의 인사. 살짝 곁눈질로 봤던 그녀는 예뻤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할 만큼. 난 잠시 멍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저, 이 근처가 처음이라서요.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가까스로 입을 뗀 내 질문에 그녀는 아무 데나 괜찮다 했다. 나도 그랬다. 예쁜 그녀와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었으니까. 운전대를 잡은 손이 긴장을 한 탓에 덜덜 떨렸다. 운전대라도 잡아야 떨리는 손이 겨우 멈출 수 있는 상태였다. 내 귀엔 심장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 지 혹시 그녀가 눈치챌까 조마조마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드라마 같은 순간이 내게도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도 부럽지가 않았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도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카메라가 온통 내 주위를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꿈보다 더 생생한, 그런 일이 오늘 지금 내게 일어난 것이다.
난 만난 지 10초 만에 이미 속으로 결혼을 결정한 상태였다. 혼자만의 결정이었고 혼자만의 결심이었다. 이런 결정과 결심 덕분에 상상의 날개는 더욱 활짝 펼쳐졌다. 천생연분이란 오늘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다른 곳에서 살다가 우연히 그리고 운명처럼 만나는 두 남녀의 이야기라니. 성남이란 단어만 듣고 약속을 미루던 지난 한 달이 후회로 다가왔다. 한 달 전에 만났다면 벌써 한 달간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5분쯤 차를 이동시키다 큰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한정식이라는 큰 간판이 보였다. 결국 그곳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