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고 있는 걸 놓을 수 있는가
"금방 책 나오시겠는데요."
책 쓰기 수업 첫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수업 첫 시간에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습니다. 같은 뜻으로 모인 ,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얘기하는 시간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그간 혼자 글을 써왔다고 저를 소개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쓴 글이 1,000개, 티스토리 블로그에 쓴 글도 400개가 넘는다며 자랑하듯 저를 드러냈습니다.
책 쓰기 수업에는 목차 만들기 숙제가 있습니다. 혼자 목차를 만들면서 '여태 쓴 글을 엮기만 하면 금방 끝나겠지, 금세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목차를 만들며 블로그에 쓴 글을 하나씩 살폈습니다. 그리고 좌절했습니다. 제가 쓴 글들은 하나의 주제로 얽힌 것이 아닌 중구난방 식의 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수업 시간에 숙제를 제출하는데 선생님께서 소감을 물으셨습니다. 목차 만들면서 확신이 드셨나요 아니면 의심이 드셨나요. 질문을 받은 저는 뜨끔했습니다. 솔직하게 선생님께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사실 확신보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이유는 목차를 만들면서 여태 쓴 글로는 책이 될 수 없음을 알았고, 썼던 글은 전부 폐기 처분해야 할 것 같다고요. 제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선생님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걸 얻을 수 있어요."
심오한 이야기였습니다. 쥐고 있는 걸 놓아야 새로운 걸 얻을 수 있다. 여태 쓴 글을 놓아야 책이 될만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손에 한가득 물건을 쥐고선 어떤 것도 쥘 수 없는 것이 이치니까요. 제가 쥐고 있던 블로그 글은 이제 놓아주고 새로 글을 쓰라는 말처럼 다가왔습니다.
쥐고 있는 걸 놓기는 어려웠습니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어려워 계속 블로그를 기웃거리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블로그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건 이제 그만 놓아주자고 마음먹으니 그때부터 새로운 글이 써졌다는 점입니다.
예전 글을 어떻게든 가져와 수정하는 것이 빠를 거라 생각했는데 새로 글을 짓는 것이 더 빠름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전 글을 종종 들춰봅니다. 참고용으로 보는 정도입니다. 2018년엔 이런 경험을 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면서요. 어떤 글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저를 잡아끌기도 합니다. 또 어떤 글을 읽을 땐 오만방자한 저를 마주하게도 합니다. 글이란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글을 읽는 것 만으로 어느 시점으로 순간 이동이 되고, 생생하게 다시 그 상황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매일 글 쓰는 저를 보며 주변에선 자신도 써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저는 적극 권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몇 번 해보고 금방 포기합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친구 만나 술 마시고, 좋아하는 드라마 보고, 운동하고, 글도 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은 해낼 수 있겠지만 꾸준히 해내기 어려운 이유일 것입니다. 일상이 구조조정이 되지 않으면 뭐든 매일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모든 걸 다 쥐고선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습니다. 아직 놓지 못했다면 오늘부터라도 놓아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