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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Dec 29. 2022

초고는 확신을 갖게 하고 퇴고는 출간 확률을 높인다

투고하면서 배운 것

초고는 자기 확신을 갖게 하고 퇴고는 출간 확률을 높인다. 초고는 그 자체로 책으로 출간되진 못한다. 논리적 오류도 심하고 내용면에서도 보완할 내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초고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자기가 쓰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쓰는 작가는 거의 없다. 게다가 그 어떤 작가도 초고에 감동하거나 전율을 느끼면서 작업하지도 못한다.


초고는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그린 그림과 같다. 그냥 되는 대로 이것저것 다 적어놓고는 온갖 장소에 다 굴러다니게 내버려 두는 그런 것이다. 초고가 주는 유일한 선물이라면 완성 형태로 된 결과물이 하나 탄생했다는 정도가 전부다.   


초고가 마구잡이로 그린 그림이라면 퇴고는 정교한 덧칠과 수정이다. 퇴고를 하며 온전한 형태의 그림이 만들어진다. 색이 정해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고 덜어낼 부분은 덜어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퇴고는 내 글에 최초의 독자가 되어보는 경험이다. 독자의 시선으로 다시 내 글을 읽는 신기한 경험을 퇴고하며 겪는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의 초고를 수백 번 고친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고치는 과정을 통해 다듬어진 원고는 출간 확률이 높아짐을 스스로 안다.


모든 책은 반복 퇴고의 결과다. 책마다 퇴고 횟수도 수정기간도 모두 다르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적게는 1년, 책에 따라서는 수년에 걸친 조사와 연구가 선행되기도 한다. 초고를 완성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초고를 완성한 후 개운한 마음이 들 때까지 다듬고 수정하는 과정 또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되다.


조사 하나, 한 단어에 옴짝달싹 못 하고 책상 앞에 웅크리고 앉은 저자의 좁은 등을 독자는 알지 못한다. 어떤 글의 생명은 한 생명보다 길다는 걸 알기에, 한번 책으로 나오면 고쳐 쓸 수 없기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특히나 예민하다.  독자가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의미 차이가 미묘한 수준이라 할지라도 저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외면하고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완성된 초고를 3시간 동안 다듬어봤다. 전체 구성이 달라질까 염려하면서, 중간에 흐름이라도 끊어질까 봐 걱정하면서 한동안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작업했다. 3시간 뒤 수정 초고를 완성했다. 여전히 출간이란 종착점까진 긴 여정이 남았으나 퇴고를 하면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느꼈다. 내 글도 책이 될 수 있다는 어떤 확신, 즉 출간 확률이 높아짐을 경험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몇 번의 수정을 할지는 모른다. 하나 수정하면 할수록 확률이 늘어날 테니 이 작업을 계속해볼 생각이다. 이 또한 과정 중 일부다. 책이라는 결과물에 집착하면 자칫 포기할지 모르나 과정 전체를 즐기기로 하면 그만큼 버틸 확률도 올라간다. 힘든 과정을 견딘 결과물의 달콤함을 안다. 통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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