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류 Jan 21. 2023

살사가 가르쳐준 삶의 태도 3가지

비결은 무심함

"일단, 무조건 버터. 버티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알았지? 무조건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야."


살사 수업마다 남자들은 꼭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수업 시작 전에 한 번, 수업 후에 또 한 번 그리고 살사바에 가서 마지막으로 한 번. 왜 남자들에게만 쌉(사부의 줄임말)은 이렇게 이야기했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3가지다.


버티라고 했던 첫 번째 이유 - 거절에 익숙해지기


살사는 남자가 리드하는 춤이다. 살사에서는 춤을 리드하는 남자를 '살세로', 함께 호흡을 맞추는 여자를 '살세라'라고 부른다. 춤을 추려면 남자는 여자에게 춤 신청을 해야 한다. '저랑 한 곡 추시겠어요?'라는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양손을 내밀거나, 친한 사이라면 눈빛을 건네거나 아니면 말로써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의사 표시는 어렵다. 남자는 의사표시를 반드시 해야만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만약 거절 당하면 춤을 출 수 없다. 물론 때에 따라선 여자가 먼저 의사 표시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거의 없다. 여자가 먼저 의사 표시를 하는 경우는 여자 사부 혹은 선배 기수들이 사기를 북돋아주려는 차원에서 신청하는 것이다. 의사 표시엔 거절을 포함한다. 그러니 남자는 거절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상대에게 춤 신청을 해야 한다. 만약 거절 확률을 낮추려면 아는 사람 하고만 춤을 춰야 한다.


헌데 아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거절 확률이 올라가게 된다. 물론 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한 번도 거절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계속 거절당할 수도 있다. 이런 부담감을 견뎌야 하는 건 오로지 남자의 몫이다. 


처음 거절을 당하면 자존감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거절의 사유는 다양하지만 이걸 좀처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거절도 계속 당해보면 익숙해진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사실 거절을 당하고 자존감이 추락하는 데는 당연히 '승낙'을 전제로 한 생각이 뒷받침되어 있다. 이 생각이 거절당하면 바뀌게 된다. 기본값이 '거절'이고 변수가 '승낙'인 상태로 말이다. 이 상태에 익숙해지면 어느 곳에 가서도 춤을 신청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버티라고 했던 첫 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버티라고 했던 두 번째 이유 - 조급함 버리기


3개월쯤 살사를 배우면 내가 구사할 수 있는 패턴은 많아야 3개에서 4개다. 물론 수업에서 배운 것은 이보다 많다. 하지만 배운다고 바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보통은 3개에서 4개 패턴으로 노래 한 곡 전체를 소화해야 한다. 같은 동작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살세라에게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지루함을 준다고 느끼게 된다. 지극히 상대적으로 말이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춤에 집중하지 못한다. 옆에서 추는 멋진 패턴을 구사하는 다른 남자들에게 시선이 간다. 그들의 화려한 패턴에 눈을 빼앗기고 어서 빨리 나도 실력이 늘기를 바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덩달아 자신감도 떨어진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몸에 익을 때까진 사람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수업을 받다 보면 어떤 이는 타고난 운동 신경 덕분에 1개월 만에도 실력이 느는 게 보이고, 어떤 이는 아무리 가르쳐줘도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나는 후자였다. 가르쳐 줄 땐, 수업을 받을 땐 되지만 살사바에 도착한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패턴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걸 계속 반복한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계속 반복.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 반복을 통해 낯선 패턴을 익숙한 패턴으로 바꾸는 것이다. 반복은 누구나 춤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이런 경험은 통해 조급함이 점차 사라진다. 버티라고 했던 두 번째 이유다.


버티라고 했던 세 번째 이유 - 자책하지 않기

남자들은 춤을 리드해야 하는 부담을 느낀다. 부담이 가중되면 스텝이 꼬이기도 하고, 손을 제때 들어주지 못해 상대방과 동선이 꼬이기도 하고, 박자를 놓쳐 나와 상대 그리고 옆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된다. 발을 밟거나 중심이 흐트러지거나 서로 부딪히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실수를 할 때마다 참 당혹스럽다. 얼굴이 활활 타는 느낌이다. 파트너에게 고개 숙이기도 하고 머쓱하게 웃기도 하면서 넘긴다. 한편으론 어서 이 곡이 끝나기를 바란다. 그런 순간에 슬슬 내 안의 열등감이 고개를 든다. 


나는 왜 배워도 계속 제자리걸음일까 하는 자책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그러면서 어서 남들처럼 자유롭게 춤추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현실은 베이직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패턴만 배우면 금세 저들처럼 될 것 같은데, 패턴만 배우면 나도 저들처럼 리드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바라게 된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배운 대로 바로바로 실력이 되는 일은 없다. 하나의 동작이 자연스러워지기까진 시간은 필요한 만큼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연습이 아닌 다른 곳에 눈이 간다. 다양한 패턴을 가르쳐주는 곳에 귀가 팔랑 거린다 타 동호회에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리로 수업을 이동하기도 한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쌉들은 이런 반응이 감지될 때를 기똥차게 알아챈다. 당신들 또한 처음 춤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응이 감지할 때, 조바심을 잠재우기 위해, 집 나간 마음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엄한 곳으로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서 조금만 더 버티라고 얘기한다. 자책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들 또한 예전에 그랬다면서 별거 아니라고 조언한다. 마치 정상에서 하산하는 등산객이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 건네듯 '이제 진짜 거의 다 왔다'라고 이야기한다. 버티라고 했던 세 번째 이유다.


<<멘탈의 연금술>>에서 보도새퍼는 말한다. 실력이 느는 과정은 학교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1학년에서 시작해 2학년으로, 그리고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실력이 좋아질수록 더 큰 경기에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 그들은 더 큰 경기에 나갈 궁리만 할 뿐 더 큰 경기에 걸맞은 실력을 갖췄는가에 대한 검토엔 매우 인색하다. 그래서 목표는 언제나 ‘실력을 갖추는 것’으로 잡아야 한다고.


버티려면 무심해야 한다. 무심해야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무심해야 오래가고 오래가야 결국 실력이 는다. 살사가 내게 알려준 교훈이다. 실력은 정직하다. 한순간에 늘지 않는다. 지루한 반복을 견뎌낸 사람만이 결국 실력을 갖는다. 단기간에 실력이 느는 마법 같은 건 없다. 단기간에 스킬을 늘려주는 선생님도 없다. 그런 건 드라마와 영화에서만 있다. 실력은 꾸준한 반복과 연습을 통해, 땀 흘린 시간만큼 정직하게 는다. 스포츠의 세계엔 지름길 같은 건 없다. 살사에서 배운 삶의 교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한다 말하면 이상해지는 취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