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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Apr 18. 2023

안 떨리는 사람이 있을까

관객은 돈을 내고 , 무대에 선 이들은 작품을 만든다

"공연하면 안 떨려요?"


수료식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물었다. 난 이렇게 답했다.


"떨려요. 떨리지만 그냥 하는 거죠."


쿨한 척 대답했지만, 난 남들보다 엄청 떤다. 병적으로 말이다. 이번 공연만 하더라도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손과 발에 땀이 나기 시작했으며 호흡이 가빠지고 양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렸고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고 소변이 마려웠다. 이런 증상 하나하나가 나를 괴롭혔다. 난 이런 내 상황을 들키지 않으려 태연한 척 앉아서 공연을 준비하는 척했을 뿐이다. 공연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이란 걸 머리론 알아도 몸은 매번 반응했다. 내 안의 저항은 무대로 나가기 직전까지 끈질기고 집요하게 나를 방해했다. 이런 진통을 겪으며 겨우 무대로 나갔다.


헌데 무대로 나가면 이런 증상들은 말끔히 사라진다. 신기하게도. 마법처럼. 좀 전까지 그렇게 초조하고 얼굴이 창백하고 온몸으로 식은땀을 흘리던 증상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무대에 몰입한다. 내 안의 저항군이 아군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여태 이런 걸 계속경험했다. 중, 고등학교 중창단 활동 6년, 직장인 합창단 시절 2년, 그리고 살사 2년. 도합 10년이다.


10년이면 안 떨릴 만도 한데 절대 그렇지가 않다. 떨림은 몸의 저항 중 하나다.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거라 어쩔 도리가 없다. 그간 떨림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봤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소주 2병을 마시기도 했고 위스키를 원샷해보기도 했고 우황청심환을 씹어 넘기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진정되지 않았다. 10년 동안이나 말이다.


머릿속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실수하면 어떡하지, 넘어지면 어떡하지, 쪽팔리면 어떡하지라며 공연을 방해하기 위한 공작을 펼친다. 그럼 조용히 반박한다. 예를 들어 실수하면 어떡하지가 떠오르면 성공하면 어떡하지로 머릿속에서 반박한다. 쪽팔리면 어떡하지가 떠오르면 사람들이 공연에 너무 열광하면 어떡하지로 바꿔 생각한다. 나쁜 순간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나에게 좋은 순간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10년 동안 저항을 마주하며 깨달았다. 저항은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걸,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이젠 몸이 저항해도 그냥 둔다. 심호흡을 아주 크게 하면서 견딘다. 수없이 많이 카메라 앞에 서는 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매번 떨리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무대에 서는 것. 떨림의 숙명은 무대에 서기 전부터 시작하고 5분 까지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물 흐르듯 말하고 움직이는 내가 된다.


우리 대부분은 두 가지 삶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살았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미쳐 살아보지 못한 삶이다. 이 두 가지 삶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저항이다. 저항은 외부에도 있지만 내부에도 있다. 그리고 이 저항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철저히 방해한다. 살아보지 못한 삶은 저항이라는 방해로 가득한 삶이다. 대신 기대되고 즐거워 보이고 흥미로워 보인다.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기 위해선 결국 기꺼이 모험을 감내하겠다는 과감한 순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살사 무대에는 스무 명이 춤을 추고 관람석에서는 3백 명의 관객이 응원한다. 관객은 구경하기 위해 돈을 내고 , 무대에 선 이들은 살아 숨 쉬며 작품을 만들어간다. 난 관객이 되기보단 선수로 뛰고 싶다. 한 번뿐인 인생이란 무대를 공연처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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