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런하는 사람들의 비밀
요즘은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과거에는 남들의 재능을 부러워했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나보다 앞서 책을 출간한 이들을 보면서, 함께 수영 수업을 들었는데 나보다 빨리 상급반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사를 함께 시작한 111기 남자 동기들이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걸 눈으로 지켜보면서 마냥 부러워했다. 분명 같이 시작했는데 나는 안 되고 남들은 되는 걸 보면 속에선 질투가 차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 반복되는 안됨을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배움이 느린 편이란 걸. 남들은 한 번에 알아듣는 걸 나는 세 번은 들어야 이해가 된다는 걸 말이다. 다행인 건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어도 세 번 정도 들으면 이해가 됐다. 세 번째 땐 고개가 끄떡여졌다. 살사도 그랬다. 초급에서 초중급까지는 가만히 있어도 올라가는 시스템이기에 초중급까지 올라갔지만 이후에는 개인이 수업을 선택해야 했다.
초중급이 끝나고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 수업을 다시 들으려 했다. 113기에 등록해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려 했던 것이다. 초중급에서 배운 패턴이 단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동기들 대부분이 준중급을 신청하는 걸 보면서 나도 덩달아 준중급 수업을 신청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쪽팔리더라도 113기로 내려갈걸. 준중급 수업 첫날 속으로 결심했다. 선택했으니 세 번은 더 듣기로.
수업 시간 쌉(사부)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며 온 신경을 집중해 들어도 몸은 좀처럼 동작을 따라가지 못했다. 손과 발이 일심동체가 되어도 될까 말까 한 동작이 어찌 된 일인지 엇박자로 움직였다. 머리로 그린 그림은 머릿속에서만 그림이었다. 현실은 머리 따로 몸 따로 엉거주춤.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건 안 됐다. 그 뒤로 내리 세 번을 준중급 수업을 들었다.
세 번 들었어도 안 되는 건 안 됐다. 몸이 문제인지 머리가 문제인지 아니면 전부 문제인지. 총체적 난국에 빠진 내가 네 번째로 다시 준중급 수업을 들으려는데 동기가 말렸다. 준중급 그만 듣고 공연반 수업을 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귀가 얇은 편이라 동기말을 듣고 감히 공연반 수업을 신청했다. 공연반 수업은 준중급보다 한 단계 위다. 결과는 어땠을까? 예상했던 그대로다. 공연반 수업 첫날, 이건 세 번이 아니라 다섯 번이란 결론을 내렸으니까. 난생처음 보는 동작이 신기하기도 했고 멋있기도 했지만 내겐 무리 그 자체였다. 수업에서 배운 단 한 동작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남들의 마음에도. 다행인 건 공연반은 공연 일정이 정해져 있기에 꾸역꾸역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난 또 준중급 수업을 듣는다. 어쩌면 배움이 느리기에 지금도 계속 수업을 듣고 살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재밌게 해, 열심히 하고, 모르는 거 물어보고, 안 되는 거는 계속해봐”
유튜브에서 차두리 FC 서울 유스 강화 실장 영상을 봤다. 차두리가 무주군 선수단을 찾아 해준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해당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본 ‘안 되는 거는 계속해봐’라는 말 때문이다. 재밌게 하고 열심히 하고 모르는 거 물어보라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안 되는 거를 계속해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기도 했고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말처럼 다가왔다. 안 되는 거를 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코치의 역할인데 차두리는 왜 안 되는 거를 계속해보라고 조언한 것일까? 하지만 뒤에 이어진 조언을 들어보면 이해가 된다.
”지금 실수해도 돼. 지금 잘 안되고 돼. 지금 잘하라고 하는 거 아니야. 나중에 너네들이 손흥민처럼 국가대표가 되고 프로에 갔을 때 그게 완벽하게 됐으면 더 좋겠다는 거지. 지금 너네한테 완벽하게 모든 걸 바라지 않아. 너네 실수해도 되고 하지만 그걸 잘하기 위해서 자꾸 애를 쓰는 것만 보여주면 돼.”
선수는 실수를 줄여가는 게 일이다. 매일 훈련하면서 필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는 게 선수다. 실수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필드에서 실수는 줄어든다. 실수는 고스란히 선수의 경험이 되고 자산이 된다. 차두리는 해외 선수 생활과 국내 선수 생활을 겪으면서 오래도록 선수로서 그리고 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렇다. 롱런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에게 재능이 없음을 일찍 깨달은 사람들은 아닐까? 그들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노력했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배워도 잘 늘지 않는, 타고난 재능 같은 것이 없었던 덕분에 나도 같은 걸 배웠다. 이제는 춤이 늘지 않아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또한 무리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적당히 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매번 시작은 잘하지만 그만두기 또한 잘하는 내가 살사를 4년째 즐기며 하고 있다. ‘꾸준하다’ 건 자신에게 재능이 없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매일 조금씩 애쓰는 걸 표현한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