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끌어당김 법칙

'정석' 대신 '재미'를 쫓았던 남자

by 오류 정석헌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에는 덕선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이름’을 개명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덕선 엄마, 정환 엄마, 선우 엄마가 나란히 용하다는 점집에 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덕선이 대학에 가느냐 못 가느냐를 질문하는 덕선 엄마에게 점집에선 덕선이라 불릴 때마다 대학 등급이 낮아진다고 말한다. 해서 덕선 엄마는 ‘덕선’이라는 정겨운 이름 대신 ‘수연’이라는 이름을 받아온다.


덕선의 엄마는 온 가족에게 앞으로 ‘덕선’ 이를 ‘수연’이라 부를 것을 요청한다. 아빠는 좋은 이름 대신 무슨 생뚱맞은 얘기냐며 ‘덕선’이라 부르는데 옆에서 엄마만 계속 ‘수연’이라 부른다. 당사자인 ‘덕선’은 새로운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며 좋아한다. 동네 친구들의 반응도 아빠와 같았다. 친구들 모두 ‘수연’이라는 이름 대신 ‘덕선’이라고 불렀지만 유일하게 바둑기사 친구 택이만 ‘덕선’ 이를 ‘수연’이라고 부른다.


나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부모님이 고향을 다녀오신 후에 어떤 공부를 많이 하신 도사님을 만나셨다. 도사님을 만나 ‘큰 아들’의 미래를 물어보셨다. 도사님은 아직 내가 변변치 못한 이유가 이름 때문이라고 하셨다. 내 성공을 이름이 가로막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름의 마지막 글자 ‘헌’이 힘이 없어서, 기운 빠지는 발음이라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난 지금의 이름이 좋다고. 그리고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의 에피소드를 예로 들면서 부모님을 설득했다. 이름 때문에 대학에 못 간다는 점집의 예상과는 달리 덕선은 대학에 합격했다. 덕선은 스스로 자신이 대학 문을 열었다. 나도 그리 할 거라고 했다. 설득은 통했다. 덕분에 나는 원래 이름대로 산다.


내 이름은 정석헌이다. 스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는 여러 번 유산했다. 많은 아픔 끝에 태어나서인지 특별히 스님께 부탁해 이름을 얻었다 하셨다. 스님은 내게 왜 이런 이름을 지어주셨을까? 혹시 이름이라도 바르게 지어야 길을 잃더라도 다시 목적지로 도달하게끔 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스님의 바람,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난 가로샜다. 앞에 두 글자는 '정석'인데 정석과는 먼 삶을 살았다. '정석'대로 할 때보다 '정석'대로 하지 않을 때가 99.9%이었다. '정석'대로 하지 않고 요행을 바랐다. ‘정석’대로 하지 않고 대부분 옆길로 샜다. 공부도 일도, 운동도, 연애도 전부 그랬다.


학창 시절엔 내 이름 싫었다.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수학 시간이 그랬다. 이름이 ‘정석’으로 시작하니 수학 선생님은 단골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거의 모든 질문이 나부터 시작했고 내가 대답하지 못하면 주번을 불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학은 나름 재미가 있어서 그 시간이 괴롭지만은 않았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 ‘정석’ 대신 ‘재미’를 쫓았다. <수학의 정석> 같은 지루함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들을 부단히 찾아다녔다. 춤, 노래, 사진, 자전거, 등산, 수영, 인라인 스케이트, 여행, 게임, 당구, 술 등.


전부 재밌었지만 오래 하지 못했다. 3년도 되지 않아서 다 그만두었다.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들에서 재미를 얻었지만 계속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재미를 쫓은 덕분에 난 잡다하게 할 줄 아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런 나였는데 4년을 유일하게 넘긴 것이 있다. 독서와 글쓰기다. 가장 지루할 것 같고 재미없을 것 같아 외면했던 2가지를 햇수로 5년째 계속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그냥 어느 날부터 갑자기 끌렸다. 끌려서 시작했는데 그만두기 어려울 만큼 재미를 발견해버렸다.


이름에는 어떤 끌어당김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스님은 태어난 나의 운명을 미리 알고 계셨을까? 요행을 바라지 말고 정석대로 가라고 이름으로 알려주시려고 하신 것일까? 길을 잃더라도 다시 목적지를 찾아가라고 이런 근사한 이름을 지어주셨나 보다. 덕선이가 스스로 세 번째 문을 통과한 것처럼 나도 내 길을 찾는 중이다. 삶은 내 마음대로 펼쳐지는 법이 없다. 어쩌면 변화란 일상의 관성을 넘어설 이유가 충분히 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내 방 한가운데 고요히 앉아서 지금 내게 요구되는 건설적인 행동은 무엇인지 지켜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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