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 잡는 자에게 기회는 생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팔 할이 마이크였다. 마이크 덕분에 웃었고 마이크 덕분에 울었다. 마이크만 잡으면 난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마이크는 내 안의 잠들어있던 무대용 자아를 끄집어낸다. 잡는 순간부터 나는 낯선 내가 된다. 마이크를 통해 소리가 증폭되듯 내 감정도 함께 증폭된다. 증폭된 소리가 온몸을 휘감으면 전기에 감전된 듯 짜릿했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되곤 했다.
마이크를 처음 잡아본 건 고등학생 때였다. 방과 후 지하 2층 동아리 연습실에서 매일 노래 연습을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연습을 핑계로 노래방에 갔다. 마이크 앞에서 떨면 안 된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그땐 정말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연습이 있어선지, 실력이 있었는지, 운이 좋았는지 몰라도 합창 전국 대회에서 3위로 입상하기도 했다. 수상하면서도 다들 믿기지 않는다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의심을 했는데 심사위원들은 그런 우리들에게 상을 수여했다. 입상 후 전교생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영광을 얻었다. 또 서울 여러 고등학교 축제에 불려 가기도 했다.
대학생 땐 노래방에서 일을 했다. 하도 노래방에 자주 오니 어느 날 사장님이 아르바이트를 권했다. 학교 수업은 빼먹어도 아르바이트는 안 빼먹었다. 학교 수업보다 아르바이트하며 부르는 시간이 내겐 더 소중했다. 마이크가 친구였고 하울링과 매일 동거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마이크와 잠시 이별했다. 마이크 대신 일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가끔 마이크가 그리 우면 분기에 한 번 노래방을 찾았고 그날은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목청을 높였다.
두 번째 직장을 퇴사한 뒤 생긴 여유는 자연히 마이크를 찾게 만들었다. 지금은 사라진 홍대 기타 동호회에서 6개월 기타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는 행복을 맛봤다. 공연은 함께 호흡 맞춰하는 조별 공연과 단독 공연이 있었는데 난 실력도 안 되면서 무슨 용기가 나선 지 단독 공연도 지원했다. 아마도 마이크가 나를 부추겼다고 생각한다. 기타 공연 뒤엔 운 좋게 직장인 합창단에 3년간 몸담고 활동했으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었고 지금은 그마저도 그만뒀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죄송한데 여기 좀 서주시면 안 될까요.’
마이크는 프리랜서 사진 촬영 때에도 나를 따라다녔다. 일로서 행사장 촬영을 나가면 무대 감독님들과 영상 감독님들은 나에게 무대 앞에 좀 서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덩치가 커서 포커스가 잘 잡혀서, VIP와 덩치가 비슷해서, 대역을 해줄 일손이 부족해서. 덕분에 나는 매번 무대로 불려 나갔고 마치 무대의 주인공인양 행세했다.
코로나로 각종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가 된 덕분에 벌써 마이크와 멀어진 지 2년이 넘었다. 그리움이 이젠 잊힘이 되어 가는 듯하다. 올해는 다시 예전처럼 행사 촬영을 나가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잠시 희망 회로를 돌린다.
어제는 강서구청 먹자골목 사거리에 밤사가 다시 문을 연 것을 보고 잠시 설렜다. 적당한 소리로 8090 가요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좋았다. 반가웠다. 들어가서 맥주라도 한잔 하면서 음악이나 원 없이 들을까 속으로만 생각하다 들어가진 못했다. 대신 밤사 앞 사거리는 이유 없이 다섯 바퀴나 돌았다.
마이크 이야기를 쓰며 놀랬다. 마이크에 관한 에피소드가 이렇게 많았구나를 쓰면서 알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닉네임을 오류라 짓지 말고 마이크라고 지어야 맞지 않나 싶을 정도다.
마이크는 사람을 마이 크게 한다. 이렇게 커질 줄 미리 알았으면 적당히 잡을 걸 그랬나 보다. 마이크는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하게 한다. 오늘 글도 필요 이상으로 길어졌다. 마지막 단락을 쓰는데 눈물이 조금 나왔다. 밖에 비가 와서 그런가 보다.
살면서 마이크를 잡을 기회는 많이 생기지 않는다. 마이크를 처음 잡으면 실수도 할 것이다. 쪽팔린 순간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고 쪽팔림은 잠시니까. 자꾸 남 앞에 서다 보면 나아지고 익숙해질 것이다. 나에게 또 마이크 잡을 기회가 생긴다면 난 기꺼이 잡을 것이다. 용기 내서 잡는 자에게만 기회가 주어니까. 오늘은 일단 용기 내서 밤사부터 가봐야겠다. 같이 가실 분?